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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원주이씨(原州李氏) - 구
    유래
     시조 : 이춘계(李椿桂)
    시조 이춘계(李椿桂)는 고려 인종(仁宗, 17대)과 의종(毅宗, 18대) 때 병부상서(兵部尙書)와 안일호장(安逸戶長)을 지냈다.

    이춘계의 조상은 기원전 200년대에 중국 한고조(漢高祖)때 진란(秦亂)을 피하여 중원절서지방(中原浙西地方)에서 고조선으로 피난와서 원주에 정착했다고 한다.

    그후 신라 16대 흘해왕(訖解王) 때 문하시중(門下侍中)을 지낸 이진민(李眞民)이 원조이고, 이춘계는 이진민의 28세손으로 고려 때 문과에 올라 시강보덕(侍講輔德)을 지낸 뒤 진양군(進陽君)에 봉해진 이도균(李道均)의 둘째 아들이다.

    참고로 원주이씨는 (신)원주이씨와 (구)원주이씨로 나뉘는데, (신)원주이씨는 경주이씨에서 분적했다.
    인물
    고려 때 이겸(李謙)은 예의판서를 지냈고 이침은 병마절도사를 역임하였다.

    조선시대에 이방진(李邦珍)은 현감을 지냈고, 이온(李穩)은 현령, 이세증(李世曾)은 목사, 이응엽(李應曄)은 현감에 올랐으며 이천연(李千年)은 좌승지를 역임하였다. 이인민(李仁敏)은 선전관(宣傳官), 이대수(李大樹)는 군수, 이분(李芬)은 목사, 이번(李蕃)은 부호군을 역임하면서 가문을 빛냈다.
    이안세(李安世)는 군수를 지냈으며 이형창(李亨昌)과 이연수(李延秀)는 현감, 이덕의(李德義)는 목사, 이성준(李成俊)은 부사를 역임하였다.
    또한 이강중(李剛中)은 병조판서에 올랐으며 이정식(李挺植)은 절충장군(折衝將軍), 이광적(李光勣)은 도총관을 역임하면서 이름을 떨쳤다. 그외에도 이정수(李挺樹), 이극신(李克新)은 군수가 되었고, 이경용(李景龍), 이극심, 이극양(李克諒)은 부사가 되어 선정을 베풀었다.
    과거급제자(조선시대)
     이빈(李彬, 1597 丁酉生) : 문과(文科) 인조11년(1633) 식년시 병과(丙科)
     이석조(李碩祚, 1625 乙丑生) : 문과(文科) 숙종7년(1681) 식년시 병과(丙科)
     이만손(李萬孫) : 문과(文科) 연산군10년(1504) 식년시 병과(丙科)
     이태섭(李泰燮, 1847 丁未生) : 문과(文科) 고종13년(1876) 식년시 병과(丙科)
     이만림(李萬林, 1627 丁卯生) : 문과(文科) 현종14년(1673) 식년시 병과(丙科)
     이언열(李彦烈, 1680 庚申生) : 문과(文科) 숙종40년(1714) 증광시 병과(丙科)
     이면(李勉) : 문과(文科) 명종8년(1553) 별시 병과(丙科)
     이유원(李惟源, 1600 庚子生) : 문과(文科) 인조17년(1639) 식년시 병과(丙科)
     이태령(李泰齡, 1711 辛卯生) : 문과(文科) 영조20년(1744) 식년시 병과(丙科)
     이조손(李兆孫) : 문과(文科) 중종19년(1524) 별시 병과(丙科)
    등 모두 135명의 과거급제자가 있다.
    (문과 24명, 무과 48명, 생원진사시 63명)
  • ※ 과거급제자는 본관은 같으나 계통이 다른 성씨와 구분이 안된 것이다.
    ※ 과거급제자는 조선조방목 기록을 기준으로 한 것이므로 실제와 다를 수 있다.
  • 세거지
    - 강원도 원성군 호저면 일원
    - 강원도 홍천군 서면 팔봉리
    - 강원도 홍천군 화촌면 내삼포리
    - 강원도 홍천군 내촌면 도관리
    - 강원도 영월군 수주면 무능리
    - 강원도 원성군 소초면 흥양리
    - 강원도 원성군 소초면 장양리
    항렬자
    25世
    ○빈(彬)
    26世
    용(容)○
    27世
    ○재(在)
    28世
    선(善)○
    29世
    ○연(淵)
    30世
    병(秉)○
    31世
    ○환(煥)
    ○섭(燮)
    32世
    규(奎)○
    기(基)○
    33世
    ○현(鉉)
    ○석(錫)
    34世
    한(漢)○
    원(源)○
    35世
    ○정(楨)
    ○식(植)
    36世
    희(熙)○
    훈(熏)○
    37世
    ○균(均)
    ○준(埈)
    38世
    종(鍾)○
    호(鎬)○
    39世
    ○수(洙)
    ○홍(洪)
    40世
    근(根)○
    상(相)○
    41世
    ○헌(憲)
    ○희(憙)
    42世
    교(敎)○
    중(重)○
    43世
    ○구(九)
    ○옥(鈺)
    44世
    -
  • ※ 世와 代는 다른 것으로 世에서 1을 뺀 값이 代가 된다. (예: 26世孫은 25代孫)
  • 본관 연혁
     본관소재지 : 강원도 원주
    원주(原州)는 강원도 남서부에 위치한 지명으로 본래 고구려의 평원군(平原郡) 또는 치악성(雉岳城)인데, 677년(신라 문무왕 17)에 북원소경(北原小京)이었으며 757년(경덕왕 16)에 북원경(北原京)으로 고쳤다. 940년(고려 태조 23)에 원주(原州)로 개칭하였고, 1018년(현종 9)에 군으로 바꾸어 열월군과 제천군을 속군으로 평창현·단산현·영춘현·주천현·황려현을 속현으로 거느린 큰 군이 되었다. 1259년(고종 46)에 일신현(一新縣)으로 강등되었다가, 1260년(원종 1)에 원주군으로 복구되었다. 1269년(원종 10)에 정원도호부(靖原都護府)로 승격되었으며, 1291년(충렬왕 17)에 익흥도호부(益興都護府)로 개칭되었다. 1308년(충렬왕 34)에 원주목으로 승격되었으나, 1310년(충선왕 2)에 성안부(成安府)로 강등되었다가 1353년(공민왕 2)에 원주목으로 회복되었다. 조선에 들어서도 원주목을 유지했으며, 강원도의 관찰사영이 위치한 행정중심지였다. 1683년(숙종 9)과 1728년(영조 4)에 잠시 현으로 강등되기도 하였다. 1895년(고종 32) 지방제도 개정으로 23부를 실시함에 따라 강원도의 감영이 폐지되고 충주부 소속의 원주군이 되었다가, 1896년에 도제 실시로 강원도 원주군이 되었다. 1955년 원주읍이 원주시(原州市)로 승격되고 나머지는 원성군(原城郡)이 되었다. 1989년 원성군을 다시 원주군으로 개칭하였고, 1995년 원주군이 원주시에 통합되었다.
    인구수
    통계청의 인구조사에 의하면 원주이씨(구)는
    1985년에는 681가구 2,781명, 2000년에는 1,061가구 3,538명,
    가장 최근인 2015년에는 0명으로 조사되었다.
  • ※ 2015년 인구조사에서는 본관은 같으나 계통이 다른 성씨를 구분하여 조사하지 않았다.
  • 참고사항
    - 갈촌공파(葛村公派)
    - 교도공파(敎道公派)
    - 동정공파(同正公派)
    - 병사공파(兵使公派)
    - 사용공파(司勇公派)
    - 사직공파(司直公派)
    - 은사공파(隱士公派)
    - 주부공파(主簿公派)
    - 평천공파(平川公派)