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래
시조 : 이방서(李方瑞)
시조 이방서(李方瑞) 고려(高麗)때 밀직사사(密直司事)를 지냈다.
이방서의 손자인 이헌조(李憲兆)는 평장사(平章事)를 역임하고, 이천에 정착하여 살았다.
그래서 후손들은 음죽(이천의 옛이름)을 본관으로 하였다.
과거급제자(조선시대)
이춘경(李春景, 1561 辛酉生) : 생원진사시(生員進士試) 선조24년(1591) 식년시 삼등(三等)
이준고(李遵古) : 역과(譯科) 광해군8년(1616) 증광시
이홍장(李弘章, 1621 辛酉生) : 의과(醫科) 인조23년(1645) 식년시
이상하(李相夏) : 주학(籌學) 숙종18년(1692)
이주하(李○夏, 1602 壬寅生) : 주학(籌學) 현종7년(1666)
이익장(李益章, 1618 戊午生) : 주학(籌學) 인조21년(1643)
이익수(李益壽) : 주학(籌學) 중종17년(1522)
이팽수(李彭壽) : 주학(籌學) 중종17년(1522)
이증수(李增壽) : 주학(籌學) 연산군1년(1495)
이덕택(李德澤) : 주학(籌學) 영조12년(1736)
* 모두 10명의 과거급제자가 있다.
(생원진사시 1명, 역과 1명, 의과 1명, 주학 7명)
※ 과거급제자는 조선조방목 기록을 기준으로 한 것이므로 실제와 다를 수 있다.
본관 연혁
본관소재지 : 충청북도 음성
음죽(陰竹)은 충청북도 음성군(陰城郡)과 경기도 이천시(利川市)의 일부 지역에 있던 곳이다. 본래 진한(辰韓)의 노람국(奴籃國)이 있었던 지역이었으며, 고구려 때 노음죽현(奴音竹縣)이라 하고, 757년(신라 경덕왕 16) 음죽현으로 고쳐서, 고려·조선 시대에도 그대로 따랐다. 1895년(고종 32) 지방제도 개정으로 음죽군으로 승격이 되었으나 1914년 군면 폐합으로 군을 폐지하고 그 지역을 동면(東面)의 노평리(老坪里) 일부, 하율면(下栗面)의 총곡리(叢谷里) 일부, 상율면(上栗面)의 팔성리(八星里) 일부 및 석교촌(石橋村) 일부는 충청북도 음성군에 속하게 하였고, 나머지는 경기도 이천시에 병합되었다.
인구수
통계청의 인구조사에 의하면 음죽이씨는
1985년에는 62가구 303명, 2000년에는 81가구 286명,
가장 최근인 2015년에는 462명으로 조사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