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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평창이씨(平昌李氏)
유래
시조 : 이광(李匡)
시조 이광(李匡)은 고려 인종 4년에 태어나 고려 명종(明宗) 때 태사(太師)를 역임하고 광록대부(光祿大夫)로 추밀원부사(樞密院副使)에 올라 백오(白烏. 평창의 옛이름)군에 봉해졌다. 이광의 8세손 이천기(李天驥)가 고려 공민왕 때 산기상시(散騎常侍)를 역임한 후 고려의 국운이 기울자 불사이군의 충절로 아들 3형제를 데리고 장단(長湍)으로 내려가 절의를 지켰으므로 태조가 그 충절을 가상히 여겨 평창군(平昌君)에 봉했다. 그래서 후손들이 본관을 평창으로 하였다. 한 때 이거명의 세째아들 이윤장(李潤張)을 시조로 알려져 왔으나 조선 숙종 때의 갑자보가 위조된것으로 밝혀져 시조를 이광으로 확정했다고 한다. 인물
평창이씨의 중시조격인 이천기(李天驥)는 고려말에 원나라 제과(制科)에 급제, 산기상시(散騎常侍)를 지냈는데 그의 후손에서 많은 인물이 나와 조선시대에 문과 급제자 25명을 배출했다.
이천기의 증손자인 이영서(李永瑞)는 세종 때 문과에 급제, 예조정랑을 지냈는데 특히 서예로 이름이 높았다. 이영서의 아들 이계남(李季男), 이계동 형제가 뛰어나 이계남은 연산군 때 이조판서에 이르렀고 중종반정 공신에 올랐으며 이계동은 역시 연산군 때 병조를 거쳐 영중추부사에 이르렀다. 근세인물로는 한국 카톨릭사에 커다란 발자취를 남긴 이승훈(李承薰)이 유명하다. 그는 천주교인 이얼을 만나 입교를 결심하고 1783년 청나라에 가서 천주교의 교리를 익힌 후 예수회의 신부에게 영세를 받아 우리나라 최초의 천주교 영세신자가 되었다. 그후 교리서적과 십자가상을 가지고 귀국하여 김범우의 집에 조선교회를 설립하고 주일미사와 영세를 행하며 전도에 힘쓰다가 체포되어 가족들의 권유로 배교(背敎)했다가 다시 교회활동을 시작하여 자신이 주교가 되어 성사(聖事)를 집행했으며 그후 수차에걸쳐 배교 또는 부교(復敎)를 거듭하다가 1801년 신유박해로인해 의금부의 취조를 받고 사형당했다. 주요 인물
과거급제자(조선시대)
이양(李瀁, 1690 庚午生) : 문과(文科) 영조4년(1728) 별시 갑과(甲科) 장원급제
이인채(李仁采, 1695 乙亥生) : 문과(文科) 영조22년(1746) 별시 갑과(甲科) 장원급제 이창현(李昌炫, 1609 己酉生) : 문과(文科) 효종2년(1651) 정시 갑과(甲科) 장원급제 이관(李寬, 1713 癸巳生) : 문과(文科) 영조31년(1755) 별시 병과(丙科) 이치훈(李致薰, 1759 己卯生) : 문과(文科) 정조22년(1798) 식년시 을과(乙科) 이동현(李東顯, 1726 丙午生) : 문과(文科) 영조38년(1762) 알성시 을과(乙科) 이봉순(李鳳淳, 1814 甲戌生) : 문과(文科) 고종26년(1889) 알성시 병과(丙科) 이광직(李光○, 1692 壬申生) : 문과(文科) 영조9년(1733) 식년시 병과(丙科) 이시담(李時○, 1626 丙寅生) : 문과(文科) 효종5년(1654) 식년시 병과(丙科) 이광익(李光瀷, 1703 癸未生) : 문과(文科) 영조9년(1733) 식년시 병과(丙科) 등 모두 126명의 과거급제자가 있다. (문과 24명, 무과 21명, 생원진사시 79명, 의과 2명) 세거지
-강원도 인제군,정선군
-강원도 평창군 평창면, 미탄면 -황해도 금천군, 신계군 다율면 -평남 강서군 -평북 초산군 강면 용성동 -함남 안변군, 북청군, 단천군 본관 연혁
본관소재지 : 강원도 평창
평창(平昌)은 본래 고구려의 욱오현(郁烏縣: 일명 于烏縣)이었다가 신라 영역이 되어 경순왕 때에 백오현(白烏縣)이라 개칭하여 내성군(奈城郡: 영월군)의 영현(領縣)으로 삼았다. 고려 초에 지금의 이름인 평창현으로 이름을 개칭되었으며, 1018년(현종 9)에 원주의 속현으로 병합되었다가 1299년(충렬왕 25)에 현령(縣令)을 두었다. 1387년(우왕 13)에 평창군으로 잠시 승격되기도 했으나 곧 현으로 환원되었다. 1392년(태조 1)에 태조 이성계의 고조부인 목조(穆祖)의 비 효경왕후 이씨의 고향이라 하여 평창군으로 승격되어 조선시대 동안 유지되었다. 1895년(고종 32) 지방제도 개정으로 충주부(忠州府) 평창군으로 되었다가, 1896년 13도제(道制) 실시로 강원으로 편입되었다. 1914년 군면 폐합으로 미탄면·대화면·진부면·봉평면은 그대로, 군북면·남면·북면이 군내면으로 통합되었다. 1979년에 평창면이 평창읍으로 승격되었다. 1983년에 행정구역 조정에 따라 봉평면 백옥포리(白玉浦里)·장평리, 진부면 속사리·노동리(路洞里)·용전리(龍田里)·이목정리(梨木亭里)·도사리, 대화면 신리(新里) 일부를 통합하여 용평면(龍坪面)을 설치하였고, 1989년 도암면 호명리가 진부면에 편입되었다. 2003년 평창읍·미탄면·방림면·대화면·봉평면·용평면·진부면·도암면 등 1읍 7면과 계촌출장소로 이루어져 있다. 인구수
통계청의 인구조사에 의하면 평창이씨는
1985년에는 13,531가구 55,487명, 2000년에는 20,718가구 65,945명, 가장 최근인 2015년에는 80,607명으로 조사되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