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래
시조 : 이선(李璿)
시조 이선(李璿)은 조선 시대에 참봉(參奉)을 지낸 후 해주(海州)에 정착하여 살면서 후손들이 본관을 해주로 하게 되었다.
주요 인물
과거급제자(조선시대)
이어진(李於陳, 1577 丁丑生) : 무과(武科) 인조15년(1637) 별시 병과(丙科)
이효익(李孝益, 1649 己丑生) : 무과(武科) 숙종1년(1675) 증광시 병과(丙科)
이석배(李碩培, 1650 庚寅生) : 무과(武科) 숙종12년(1686) 별시 병과(丙科)
이순립(李舜立) : 무과(武科) 효종2년(1651) 별시 병과(丙科)
이기주(李起周, 1639 己卯生) : 무과(武科) 현종13년(1672) 별시 병과(丙科)
이길(李吉, 1595 乙未生) : 무과(武科) 인조15년(1637) 별시 병과(丙科)
이귀남(李貴男, 1599 己亥生) : 무과(武科) 인조15년(1637) 별시 병과(丙科)
이한금(李汗金, 1603 癸卯生) : 무과(武科) 인조15년(1637) 별시 병과(丙科)
이익대(李益大, 1668 戊申生) : 무과(武科) 숙종25년(1699) 식년시 병과(丙科)
이지선(李枝璇) : 무과(武科) 효종2년(1651) 별시 병과(丙科)
등 모두 104명의 과거급제자가 있다.
(무과 10명, 생원진사시 4명, 역과 48명, 의과 16명, 음양과 8명, 율과 8명, 주학 10명)
※ 과거급제자는 조선조방목 기록을 기준으로 한 것이므로 실제와 다를 수 있다.
본관 연혁
본관소재지 : 황해도 해주
해주(海州)는 황해도 남해안에 위치한 도청소재지이다. 고조선시대에 대방군(帶方郡)에 속하여 고죽(孤竹)으로 불리었다. 고구려 때에는 내미홀(內米忽) 또는 지성(池城)·장지(長池) 등으로 불리우다가, 748년(신라 경덕왕 7)에 폭지군(瀑池郡)으로 바뀌었다. 936년(고려 태조 19)에 태조가 남쪽이 바다와 접하고 있다고 하여 해주를 사명(賜名)했으며 성종 때 와서는 별호로 대령(大寧)·서해(西海) 등으로 불리기도 하였다. 983년(성종 2)에 해주목으로 승격된 데 이어 1018년(현종 9)에 안서도호부로 개편되었고 1247년(고종 34)년에는 다시 해주목으로 환원되었다. 1616년(광해군 8) 현으로 강등되었다가 1623년(인조 1)에 다시 목으로 복구되었다. 1895(고종 32) 지방제도 개정으로 해주부가 설치되었고, 1896년 도제 실시로 황해도의 도청소재지가 되었다. 1945년 해주시로 개편되었다. 1954년 북한의 관제 정비로 황해남도에 편입되었다.
인구수
통계청의 인구조사에 의하면 해주이씨는
1985년에는 502가구 2,164명, 2000년에는 606가구 2,064명,
가장 최근인 2015년에는 1,531명으로 조사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