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래
시조 : 이용상(李龍祥)
13세기 초 고려 고종 때 안남국(安南國. 현 베트남)의 첫 독립국가인 리 왕조(1009~1226)의 왕 이천조(李天祚)가 트란 왕조에게 권력을 빼앗기자 둘째 왕자 이용상(李龍祥)이 1226년(고려 고종 13년) 배를 타고 정처없이 떠났다. 그가 당도한 곳은 지금의 황해도 옹진군 화산으로 피난왔다. 이를 들은 고종이 이를 가상히 여겨 화산군에 봉하고 그 곳을 식읍으로 하사하였다.
그래서 후손들이 본관을 화산으로 하였다.
과거급제자(조선시대)
이정일(李鼎鎰, 1777 丁酉生) : 문과(文科) 정조23년(1799) 알성시 병과(丙科)
이헌국(李憲國, 1698 戊寅生) : 생원진사시(生員進士試) 영조16년(1740) 증광시 삼등(三等)
이휘봉(李輝鳳, 1819 己卯生) : 생원진사시(生員進士試) 철종1년(1850) 증광시 삼등(三等)
이만영(李萬泳, 1874 甲戌生) : 생원진사시(生員進士試) 고종31년(1894) 식년시 삼등(三等)
이경행(李景行, 1790 庚戌生) : 생원진사시(生員進士試) 순조9년(1809) 증광시 삼등(三等)
이희지(李羲之, 1735 乙卯生) : 생원진사시(生員進士試) 정조1년(1777) 식년시 이등(二等)
이언우(李言禹, 1866 丙寅生) : 생원진사시(生員進士試) 고종22년(1885) 증광시 이등(二等)
* 모두 7명의 과거급제자가 있다.
(문과 1명, 생원진사시 6명)
※ 과거급제자는 조선조방목 기록을 기준으로 한 것이므로 실제와 다를 수 있다.
본관 연혁
본관소재지 : 황해도 금천
화산(花山)은 황해도 금천군(金川郡)의 다른 이름이다. 현재 황해북도 남부에 위치하고 있다. 고구려 때의 명칭은 굴압현(屈押縣)이었다가 757년(신라 경덕왕 16)에 강서현(또는 강음현)으로 개칭되었다. 송악군(松嶽郡: 지금 開城)의 속현이었으나 고려 현종 때 뒤에 개성부로 개편된 개성현(開城縣)에 편입되었다. 1413년(태종 13) 강음현으로 황해도에 편입되었고, 1651년(효종 2)에 우봉현과 합쳐 금천군으로 승격되었다. 1895년(고종 32) 지방제도 개정으로 강음군이 되었다. 1914년 군면 폐합으로 우봉(牛峰)·토산(兎山)·강음을 금천군으로 통합하였다. 1954년 황해도가 남도·북도로 분할됨에 따라 황해북도에 속하게 되었다.
인구수
통계청의 인구조사에 의하면 화산이씨는
1985년에는 258가구 1,131명, 2000년에는 557가구 1,775명,
가장 최근인 2015년에는 1,237명으로 조사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