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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밀양이씨(密陽異氏)
    유래
     시조 : 이모심(異牟尋)
    시조 이모심(異牟尋)은 중국 당(唐)나라 덕종(德宗 : 제9대 왕, 재위기간 780~804)때 운남왕(雲南王)에 책봉 되었다고 전한다. 이모심이 신라 원성왕(元聖王)의 때인 791년 신라로 건너와 지금의 경상남도 밀양에 정착하였다고 한다. 그로부터 5년 후인 796년 신라에 귀화하여 후손들이 본관을 밀양으로 하였고 한다.

    이모심(異牟尋)의 후손인 이응보(異膺甫)를 1세조로 하고 있다. 이응보는 고려 1019년(현종 10)에 좌복야(左僕射)를 지낸 인물이다.
    인물
     이응보(異膺甫) : 1019년(현종 10) 우복야(右僕射)에서 좌복야(左僕射)로 전임되고, 1032년(덕종 즉위) 수사공(守司空)에 승진하여, 1036년(정종 2) 대위상서좌복야(大尉尙書左左僕射)가 되고, 1047년(문종 1) 상장군(上將軍)으로 개부의동삼사(開府儀同三司)가 더해졌다.

     이유충(異惟忠) : 1060년(문종 14) 동지중추원사(同知中樞院事)에서 중추원사(中樞院使)가 되고, 이듬해 형부 상서(刑部尙書)․ 참지정사(參知政事)․상주국(上柱國)을 지내고, 1062년 판삼사사(判三司事)․ 서북면 중군병마사(西北面中軍兵馬使)에 올라 서여진(西女眞)의 영원장군(寧遠將軍) 고지지(高之智)와 그 무리에게 향연을 베풀어 위무(慰撫)했으며, 그 뒤 수사공(守司空)을 거쳐 1072년(문종 26) 중서시랑평장사(中書侍郞平章事)에 이르러 이해에 죽었다.

     이선정(異善貞) : 1059년(문종 13) 안서 도호부사(安西都護府使) 도관원외랑(都官員外郞)으로 있으면서 '주후방(주後方)' 73판, '의옥집(疑獄集)' 11판, '천옥집(川玉集)' 10판을 새로 판각(板刻)하여 왕에게 바쳤다.

     이흥원(異興遠) : 고려 때 판도판서(版圖判書)와 판예부사(判禮部事)를 지냈다.
     이순( 詢) : 고려 때 상서좌복야(尙書左僕射)를 지냈다.
     이수홍(異垂弘) : 고려 때 은청광록대부(銀靑光祿大夫)로 이부상서(吏部尙書)․ 만하시랑평장사(門下侍郞平章事) 등을 역임하였다.
    본관 연혁
     본관소재지 : 경상남도 밀양
    밀양(密陽)은 지금의 밀양시 일원에 있던 지명으로 삼한시대에 변한(弁韓)의 일부로 가락국(駕洛國)에 속했으며 미리미동국(彌離彌東國)이 있었다고 한다. 법흥왕 때 신라에 병합되어 추화군(推火郡, 밀벌 또는 미리벌)이 설치되었다가, 757년(경덕왕 16)에 밀성군(密城郡)으로 개편하였다. 995년(고려 성종 16)에는 밀주(密州)로 개칭하였고, 1018년(현종 9)에 밀성군(密城郡)으로 개편되었다. 1275년(충렬왕 1)에는 군민의 모반 사건으로 귀화부곡(歸化部曲)으로 강등되어 계림부(鷄林府: 慶州)에 편입되었다가 후에 현으로 승격하였다. 1285년에는 군으로 승격되었으나 다시 현으로 강등되었다가 1390년(공양왕 2)에 밀양부로 승격하였다. 조선 1415년(태종 15)에 밀양도호부가 되었다가 1895년(고종 32) 지방제도 개정으로 경상남도 밀양군이 되었다. 1918년에는 부내면이 밀양면으로 개칭되고 1931년에 밀양읍으로, 1989년 시로 승격하여 독립하였다. 1995년 밀양군이 밀양시에 통합되었다.
    인구수
    통계청의 인구조사에 의하면 밀양이씨는
    1985년에는 83가구 321명, 2000년에는 175가구 590명,
    가장 최근인 2015년에는 320명으로 조사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