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래
시조 : 인후(印侯)
시조 인후(印侯, 1250년 ~ 1311년)는 '고려사'에 의하면 그는 원(元)나라 사람으로 원래 이름은 '훌라타이(忽刺歹)'이다. 인후 라는 이름은 당시의 대장군 인공수(印公秀)와 친하여 그의 성을 빌려 쓴 것이라고 한다.
1275년(고려 충렬왕 1)에 충렬왕의 비이며 원나라의 황녀인 제국대장공주(齊國大長公主)를 따라 고려에 들어와 귀화하여, 1309년(충선왕 1) 평양군으로 봉해지고 자의도첨의사사가 되었으며 검교정승을 지냈다.
아들 인승단(印承旦)이 충목왕 때 좌정승으로 연안부원군에 봉해짐으로써 후손들이 본관을 연안으로 하였다.
인물
인후의 아들 인승광(印承光)은 문과에 급제, 호군(護軍)을 지냈고, 또 인영보(印榮寶)가 고려 말에 대장군을 지냈다.
주요 인물
본관 연혁
본관소재지 : 황해도 연백
연안(延安)은 황해도 연백군(延白郡) 일원의 옛 지명으로 고구려 때 동음홀(冬音忽) 또는 고염성(鼓鹽城)이라 부르다가 신라시대에 해고군(海皐郡)으로 바꾸었다. 고려에서는 염주(鹽州)·영응현(永膺縣)·복주(復州)·석주(碩州)·온주(溫州) 등으로 고쳐 불렀고, 1310년(충선왕 2)에 연안(延安)으로 고쳤다. 1413년(태종 13)에 연안도호부가 되었고, 1895년(고종 32) 지방제도 개정으로 연안군이 되었다. 1914년 군면 폐합으로 연안군은 다시 배천군(白川郡)과 합하여 연백군이 되었다.
인구수
통계청의 인구조사에 의하면 연안인씨는
1985년에는 20가구 120명, 2000년에는 164가구 588명,
가장 최근인 2015년에는 164명으로 조사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