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래
시조 : 임영진(任英進)
임영진(任英進)은 고려시대에 희릉직장(禧陵直長)을 지냈다고 한다.
문헌이 없어 세계나 본관의 유래 등은 알 수 없고 후손들이 그를 시조로, 곡성(谷城)을 본관으로 삼아 세계를 이어왔다.
과거급제자(조선시대)
임계중(任繼重) : 문과(文科) 중종9년(1514) 명경별시 병과(丙科)
임광현(任光鉉, 1724 甲辰生) : 문과(文科) 영조29년(1753) 알성시 병과(丙科)
임연복(任延福) : 문과(文科) 명종19년(1564) 별시 병과(丙科)
임기원(任基元, 1842 壬寅生) : 문과(文科) 고종5년(1868) 별시 병과(丙科)
임명세(任命世) : 무과(武科) 효종2년(1651) 별시 병과(丙科)
임제익(任濟益, 1768 戊子生) : 생원진사시(生員進士試) 순조4년(1804) 식년시 이등(二等)
임연복(任延福) : 생원진사시(生員進士試) 명종4년(1549) 식년시 삼등(三等)
임광복(任光福) : 생원진사시(生員進士試) 중종35년(1540) 식년시 이등(二等)
* 모두 8명의 과거급제자가 있다.
(문과 4명, 무과 1명, 생원진사시 3명)
※ 과거급제자는 조선조방목 기록을 기준으로 한 것이므로 실제와 다를 수 있다.
본관 연혁
본관소재지 : 전라남도 곡성
곡성(谷城)은 전라남도 곡성군 곡성읍 일대의 옛 통칭이다. 475년(백제 문주왕 1) 욕내(欲乃) 또는 욕천군(欲川郡)이라 하였다가 757년(신라 경덕왕 16) 곡성으로 개칭하였다. 고려 초에는 승평군(昇平郡: 順天)의 속현으로 삼았다가 1018년(현종 9) 나주목(羅州牧) 관할이 되었고, 1172년(명종 2)에는 감무(監務)가 파견되었다. 1413년(태종 13)에 현감(縣監)을 두었으며, 1895년(고종 32) 지방제도 개정으로 곡성군이 되었다. 1914년 군면 폐합으로 옥과군(玉果郡) 일부와 구례군 고달면(古達面) 일부를 편입하였고, 1979년 곡성면이 읍으로 승격하였다. 현재 곡성군은 곡성읍과 오곡면(梧谷面)·겸면(兼面)·고달면(古達面)·목사동면(木寺洞面)·삼기면(三岐面)·석곡면(石谷面)·옥과면(玉果面)·입면(立面)·오산면(梧山面)·죽곡면(竹谷面)의 1읍 10개 면을 이루고 있다.
※ 곡성(谷城)은 황해도 곡산(谷山)의 옛 이름으로 고구려의 십곡성(十谷城)이다.
인구수
통계청의 인구조사에 의하면 곡성임씨는
1985년에는 432가구 1,957명, 2000년에는 1,771가구 5,686명,
가장 최근인 2015년에는 1,955명으로 조사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