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래
금성임씨(錦城林氏)에 대한 자료가 없습니다.
주요 인물
과거급제자(조선시대)
임정원(林鼎遠, 1724 甲辰生) : 문과(文科) 영조39년(1763) 증광시 갑과(甲科)
임시영(林時榮, 1596 丙申生) : 무과(武科) 인조15년(1637) 별시 병과(丙科)
임환(林渙, 1633 癸酉生) : 생원진사시(生員進士試) 현종1년(1660) 증광시 이등(二等)
임응하(林應夏, 1723 癸卯生) : 생원진사시(生員進士試) 영조16년(1740) 증광시 삼등(三等)
임응하(林應夏, 1723 癸卯生) : 생원진사시(生員進士試) 영조16년(1740) 증광시 삼등(三等)
임중유(林重儒, 1622 壬戌生) : 생원진사시(生員進士試) 효종8년(1657) 식년시 삼등(三等)
임지호(林志浩, 1707 丁亥生) : 생원진사시(生員進士試) 영조5년(1729) 식년시 삼등(三等)
임도헌(林道憲, 1707 丁亥生) : 생원진사시(生員進士試) 영조29년(1753) 식년시 삼등(三等)
임성헌(林聖憲, 1693 癸酉生) : 생원진사시(生員進士試) 영조11년(1735) 증광시 이등(二等)
임제원(林濟遠, 1737 丁巳生) : 생원진사시(生員進士試) 영조38년(1762) 식년시 이등(二等)
등 모두 12명의 과거급제자가 있다.
(문과 1명, 무과 1명, 생원진사시 10명)
※ 과거급제자는 조선조방목 기록을 기준으로 한 것이므로 실제와 다를 수 있다.
본관 연혁
본관소재지 : 전라남도 나주
금성(錦城)은 전라남도 나주시(羅州市)의 옛 이름으로 백제 때 발라군(發羅郡)으로 불리었고, 뒤에 죽군성(竹軍城)으로 바뀌었다. 백제 멸망 후 당나라가 이곳에 대방주(帶方州)를 설치하였으며, 686년(신라 신문왕 6)에는 통의군(通義郡)으로, 757년(경덕왕 16) 이후로는 금산군(錦山郡) 또는 금성군(錦城郡)으로 부르며 무주(武州: 光州)의 관할로 두었고, 회진현(會津縣)·여황현(艅艎縣)·철야현(鐵冶縣) 등이 부속으로 영입되었다. 940년(고려 태조 23)에 나주로 지명이 바뀌었고, 983년(성종 2)에 나주목이 설치되었다. 995년(성종 14)에는 나주진해군절도사(羅州鎭海軍節度使)가 되었다. 1018년(현종 9) 다시 나주목으로 고쳐 5개의 속군(무안·담양·곡성·낙안·남평)과 11개의 속현(철야·반남·안노·복룡·원율·여황·창평·장산·회진·진원·화순)을 거느렸다. 1310년(충선왕 2)에 지주사(知州事)로 강등되었다가 1356년(공민왕 5)에 다시 목으로 승격하였다. 고려·조선시대를 통하여 주로 목(牧), 부(府)로서 전남지역 행정의 중심지를 이루었다. 1895년(고종 32) 지방제도 개정으로 나주부로서 나주군 등을 관할하였고, 1981년 나주읍과 영산포읍이 통합하여 금성시로 승격하여 나주군에서 분리되었고, 금성시는 1985년 나주시로 개칭되었다. 1995년 나주시와 나주군이 통합되어 나주시로 개편되었다.
인구수
통계청의 인구조사에 의하면 금성임씨는
1985년에는 0명, 2000년에는 2명,
가장 최근인 2015년에는 6,305명으로 조사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