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래
시조 : 임박(林樸)
시조 임박(林樸)은 임성찬(林成贊)의 아들로 고려 공민왕 때의 문신(文臣)이다.
임박은 공민왕 9년 문과에 급제하여 다음 해 홍건적(紅巾賊)에게 개경(開京)이 함락되자 원사(元師) 김득배(金得培)의 참모로 전략을 세우고 왕이 남으로 피난할 때 사적(史籍), 예서(禮書) 등을 땅에 묻었다가 난이 평정된 뒤 파내어 그 일부를 보전했다.
공민왕 12년 이공일(李公逸)의 서장관(書狀官)으로 원(元)나라에 갔을 때 덕흥군(德興君)을 고려왕으로 세워 받들고 가라는 원제(元帝)의 명을 거역, 귀국 후 중서사인(中書舍人)으로 특진되고, 이어 성균제주(成均祭酒) 대사성(大司成)을 거쳐 대언(大言)을 지냈다.
평택임씨에서 분관 했다.
주요 인물
과거급제자(조선시대)
임천준(林天俊, 1598 戊戌生) : 무과(武科) 인조15년(1637) 별시 병과(丙科)
* 모두 1명의 과거급제자가 있다.
(무과 1명)
※ 과거급제자는 조선조방목 기록을 기준으로 한 것이므로 실제와 다를 수 있다.
인구수
통계청의 인구조사에 의하면 길안임씨는
1985년에는 35가구 149명, 2000년에는 113가구 368명,
가장 최근인 2015년에는 374명으로 조사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