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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성씨의 종류와 유래 성씨의 역사 족보 이야기 친인척 호칭법 국가 연대표 역대왕 연대표 성씨별 인구순위 본관별 인구순위 고사성어


     
    나주임씨(羅州林氏, 회진)
    유래
     시조 : 임비(林庇)
    시조 임비(林庇)는 충렬왕이 세자로 있을 때 원나라까지 호종한 공으로 1281년(충렬왕 7년) 보좌이등공신(輔佐二等功臣)에 책록되고, 1289년(충렬왕 15) 상장군(上將軍)과 충청도도지휘사(忠淸道都指揮使), 판사재시사(判司宰寺事)에 올랐다.

    임비의 9세손 임탁(林卓)이 해남감무(海南監務)를 지내다가 이성계가 조선을 개국하자 관직을 버리고 회진(會津)으로 이주해 살면서 회진임씨(會津林氏)로 였으나, 회진현이 나주에 병합됨에 따라 본관을 나주로 하였다.
    인물
    - 임서 : 인조 때 황해도관찰사를 지냈다.
    - 임담 : 임서의 아들. 인조 때 문과에 급제, 유탁(柳濯)의 모반사건을 처결하고 이조판서, 의금부판사를 지냈다.
    - 임한호(漢浩) : 승지 임상원(象元)의 아들. 정조 때 문과에 급제, 이조판서, 판의금부사 등을 거쳐 순조 때 우의정을 역임했는데 서얼의 등용을 주장하여 서자도 벼슬할 수 있게 하였다.
    - 임득명(得明) : 시, 서, 화의 삼절(三絶)로 불리었다.
    주요 인물
    과거급제자(조선시대)
     임안철(林顔喆, 1769 己丑生) : 문과(文科) 순조16년(1816) 별시 갑과(甲科) 장원급제
     임상덕(林象德, 1683 癸亥生) : 문과(文科) 숙종31년(1705) 증광시 갑과(甲科) 장원급제
     임긍수(林肯洙, 1800 庚申生) : 문과(文科) 헌종3년(1837) 식년시 갑과(甲科) 장원급제
     임기수(林基洙) : 문과(文科) 헌종12년(1846) 중시 갑과(甲科) 장원급제
     임영(林泳, 1649 己丑生) : 문과(文科) 현종12년(1671) 정시 을과(乙科)
     임낙진(林樂鎭, 1809 己巳生) : 문과(文科) 헌종4년(1838) 정시 을과(乙科)
     임제(林悌, 1549 己酉生) : 문과(文科) 선조10년(1577) 알성시 을과(乙科)
     임경진(林景鎭) : 문과(文科) 순조16년(1816) 중시 병과(丙科)
     임영수(林永洙) : 문과(文科) 헌종2년(1836) 중시 을과(乙科)
     임환(林渙, 1633 癸酉生) : 문과(文科) 숙종7년(1681) 알성시 을과(乙科)
    등 모두 236명의 과거급제자가 있다.
    (문과 52명, 무과 18명, 생원진사시 133명, 역과 17명, 의과 4명, 음양과 8명, 율과 2명, 주학 2명)
  • ※ 과거급제자는 조선조방목 기록을 기준으로 한 것이므로 실제와 다를 수 있다.
  • 세거지
    - 전라남도 나주군 다시면
    - 전라남도 곡성군 우달면
    - 전라남도 무안군 몽탄면 이산리
    - 전라남도 무안군 삼향면 유교리
    - 전라남도 완도군 완도읍 망석리
    - 전라남도 완도군 청산면 국산리
    - 전라남도 장성군 남면 삼태리
    - 전라북도 남원군 산동면 월석리
    - 경상북도 달성군 화원면 설화동
    - 충청남도 서천군 화양면 와초리
    항렬자
    24世
    ○진(鎭)
    25世
    ○수(洙)
    26世
    ○상(相)
    27世
    병(炳)○
    ○묵(默)
    28世
    ○규(圭)
    29世
    종(鍾)○
    석(錫)○
    30世
    ○택(澤)
    ○순(淳)
    31世
    채(采)○
    동(東)○
    근(根)○
    32世
    ○섭(燮)
    ○열(烈)
    33世
    재(在)○
    기(基)○
    중(重)○
    34世
    ○현(鉉)
    ○선(善)
    35世
    해(海)○
    태(泰)○
    자(滋)○
    36世
    ○식(植)
    ○집(集)
    37世
    광(光)○
    환(煥)○
    38世
    ○균(均)
    ○곤(坤)
    39世
    호(鎬)○
    용(鏞)○
    40世
    ○승(承)
    ○원(源)
    41世
    영(榮)○
    락(樂)○
    42世
    ○희(熙)
    ○현(顯)
    43世
    재(載)○
    교(敎)○
    44世
    ○록(錄)
    ○일(鎰)
    45世
    준(準)○
    연(淵)○
    46世
    ○모(模)
    ○업(業)
    47世
    연(然)○
    성(性)○
    48世
    -
    49世
    -
    50世
    -
    51世
    -
    52世
    -
    53世
    -
  • ※ 世와 代는 다른 것으로 世에서 1을 뺀 값이 代가 된다. (예: 25世孫은 24代孫)
  • 본관 연혁
     본관소재지 : 전라남도 나주
    나주(羅州)는 전라남도 나주시(羅州市) 지역으로 백제 때 발라군(發羅郡)으로 불리었고, 뒤에 죽군성(竹軍城)으로 바뀌었다. 백제 멸망 후 당나라가 이곳에 대방주(帶方州)를 설치하였으며, 686년(신라 신문왕 6)에는 통의군(通義郡)으로, 757년(경덕왕 16) 이후로는 금산군(錦山郡) 또는 금성군(錦城郡)으로 부르며 무주(武州: 光州)의 관할로 두었고, 회진현(會津縣)·여황현(艅艎縣)·철야현(鐵冶縣) 등이 부속으로 영입되었다. 940년(고려 태조 23)에 나주로 지명이 바뀌었고, 983년(성종 2)에 나주목이 설치되었다. 995년(성종 14)에는 나주진해군절도사(羅州鎭海軍節度使)가 되었다. 1018년(현종 9) 다시 나주목으로 고쳐 5개의 속군(무안·담양·곡성·낙안·남평)과 11개의 속현(철야·반남·안노·복룡·원율·여황·창평·장산·회진·진원·화순)을 거느렸다. 1310년(충선왕 2)에 지주사(知州事)로 강등되었다가 1356년(공민왕 5)에 다시 목으로 승격하였다. 고려·조선시대를 통하여 주로 목(牧), 부(府)로서 전남지역 행정의 중심지를 이루었다. 1895년(고종 32) 지방제도 개정으로 나주부로서 나주군 등을 관할하였고, 1981년 나주읍과 영산포읍이 통합하여 금성시로 승격하여 나주군에서 분리되었고, 금성시는 1985년 나주시로 개칭되었다. 1995년 나주시와 나주군이 통합되어 나주시로 개편되었다.
    인구수
    통계청의 인구조사에 의하면 나주임씨는
    1985년에는 62,208가구 262,877명, 2000년에는 73,556가구 236,877명,
    가장 최근인 2015년에는 277,699명으로 조사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