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즐겨찾기 등록
  • 국내최초 족보 전문사이트 Since 1997
  • 한국인의 뿌리와 전통을 이어갑니다
  • 뿌리를 찾아서는 국내에 현존하는 287개 성씨와 그에 따르는 3천여 개의 본관별 시조와 유래 등 다양한 정보를 제공합니다.
  • www.rootsinfo.co.kr
    성씨의 종류와 유래 성씨의 역사 족보 이야기 친인척 호칭법 국가 연대표 역대왕 연대표 성씨별 인구순위 본관별 인구순위 고사성어


     
    구례장씨(求禮張氏, 봉성)
    유래
     시조 : 장악(張岳)
    시조 장악(張岳, 시호는 양간)은 안동장씨 시조 장정필(張貞弼)의 7세손이다. 그는 고려 때 문하시중을 지내며 왕의 총애를 받았다. 나이 70에 고향인 봉성을 생각하고 근심이 가득하자 왕이 봉성(구례)군에 봉하고 봉성을 식읍으로 하사 하였다. 그래서 후손들이 구례를 본관으로 하였다.

    - 장악의 묘소는 전남 구례군 백운동에 있다.
    주요 인물
    과거급제자(조선시대)
     장희재(張熙載, 1588 戊子生) : 문과(文科) 인조2년(1624) 증광시 병과(丙科)
     장서한(張瑞翰, 1719 己亥生) : 문과(文科) 영조26년(1750) 별시 병과(丙科)
     장생(張生, 1603 癸卯生) : 무과(武科) 인조15년(1637) 별시 병과(丙科)
     장업(張○, 1541 辛丑生) : 무과(武科) 선조16년(1583) 별시 병과(丙科)
     장쇠(張金, 1598 戊戌生) : 무과(武科) 인조15년(1637) 별시 병과(丙科)
     장계신(張戒信, 1604 甲辰生) : 무과(武科) 인조15년(1637) 별시 병과(丙科)
     장희(張禧) : 생원진사시(生員進士試) 성종14년(1483) 식년시 삼등(三等)
     장경재(張景載, 1769 己丑生) : 생원진사시(生員進士試) 순조27년(1827) 증광시 이등(二等)
     장언후(張彦厚, 1662 壬寅生) : 생원진사시(生員進士試) 숙종8년(1682) 증광시 이등(二等)
     장우겸(張友謙) : 생원진사시(生員進士試) 중종8년(1513) 식년시 삼등(三等)
    등 모두 11명의 과거급제자가 있다.
    (문과 2명, 무과 4명, 생원진사시 5명)
  • ※ 과거급제자는 조선조방목 기록을 기준으로 한 것이므로 실제와 다를 수 있다.
  • 항렬자
    19世
    만(萬)
    20世
    한(漢)
    21世
    재(載)
    22世
    일(日)
    23世
    성(成)
    24世
    심(心)
    25世
    상(相)
    26世
    인(寅)
    27世
    섭(燮)
    28世
    시(時)
    29世
    진(鎭)
    30世
    -
    31世
    -
    32世
    -
    33世
    -
    34世
    -
    35世
    -
    36世
    -
    37世
    -
    38世
    -
  • ※ 世와 代는 다른 것으로 世에서 1을 뺀 값이 代가 된다. (예: 20世孫은 19代孫)
  • 본관 연혁
     본관소재지 : 전라남도 구례
    구례(求禮)는 전라남도 북동부에 위치하는 지명으로 본래 백제의 구지차현(仇知次縣) 또는 구차례현(求次禮縣)이었으나, 757년(신라 경덕왕 16)에 구례현(求禮縣)으로 고치고 곡성군에 속하게 하였다. 1018년(고려 현종 9)에는 남원부(南原府)의 관할이었고, 1143년(인종 21)에 독립하여 감무(監務)가 파견되었다. 1413년(태종 13) 구례현으로 승격하였고 현감이 파견되었다. 세조 무렵에는 순천부(順天府)에 속하였으나 1499년(연산군 5)에 이 지방 사람이 역모에 가담한 죄로 폐현(廢縣)되어 부곡(部曲)으로 강등되어 남원부에 속하게 하였다. 1507년(중종 2)에 다시 현으로 환원되었다. 1895년(고종 32) 지방제도 개정으로 구례군으로 남원부에 관할로 개편되었다가, 1896년 전라남도에 속하게 되었다. 1914년 군면 폐합으로 고달면을 곡성으로 이속시켰고, 현내면·가사면을 구례면으로, 간전면·문척면을 간문면으로, 방광면·소의면을 광의면으로, 용강면·중방면을 용방면으로 통합하고, 토지면·마산면·외산면·내산면은 그대로 소속시켰다. 1932년에 내산면·외산면을 산동면으로 합하였다. 1963년 행정구역 개편에 따라 구례면(求禮面)이 읍으로 승격되었다. 봉성(鳳城)은 구례의 별칭이다.
    인구수
    통계청의 인구조사에 의하면 구례장씨는
    1985년에는 2,428가구 10,670명, 2000년에는 3,327가구 10,570명,
    가장 최근인 2015년에는 15,571명으로 조사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