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래
시조 : 장세동(張世東)
시조 장세동은 장정필의 후손인 장유의 22세손이며 부호군을 지낸 장호채의 둘째 아들이다. 장세동은 조선 인조 때 가선대부로 나주에서 살다가 황해도 장연으로 이사하면서 고향인 나주를 본관으로 하였다.
과거급제자(조선시대)
장엇이(張○伊, 1588 戊子生) : 무과(武科) 인조15년(1637) 별시 병과(丙科)
장용남(張龍男, 1592 壬辰生) : 무과(武科) 인조15년(1637) 별시 병과(丙科)
장명생(張明生, 1601 辛丑生) : 무과(武科) 인조15년(1637) 별시 병과(丙科)
장대흥(張大興, 1670 庚戌生) : 역과(譯科) 숙종16년(1690) 증광시 ()
* 모두 4명의 과거급제자가 있다.
(무과 3명, 역과 1명)
※ 과거급제자는 조선조방목 기록을 기준으로 한 것이므로 실제와 다를 수 있다.
항렬자
14世
욱(旭) 성(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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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世
형(亨) 준(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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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世
재(宰) 진(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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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世
철(哲) 홍(洪)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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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世
수(秀) 원(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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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世
지(志) 진(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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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世
재(在) 원(原)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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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世
석(碩) 익(益)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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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2世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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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3世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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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世와 代는 다른 것으로 世에서 1을 뺀 값이 代가 된다. (예: 15世孫은 14代孫)
본관 연혁
본관소재지 : 전라남도 나주
나주(羅州)는 전라남도 나주시(羅州市) 지역으로 백제 때 발라군(發羅郡)으로 불리었고, 뒤에 죽군성(竹軍城)으로 바뀌었다. 백제 멸망 후 당나라가 이곳에 대방주(帶方州)를 설치하였으며, 686년(신라 신문왕 6)에는 통의군(通義郡)으로, 757년(경덕왕 16) 이후로는 금산군(錦山郡) 또는 금성군(錦城郡)으로 부르며 무주(武州: 光州)의 관할로 두었고, 회진현(會津縣)·여황현(艅艎縣)·철야현(鐵冶縣) 등이 부속으로 영입되었다. 940년(고려 태조 23)에 나주로 지명이 바뀌었고, 983년(성종 2)에 나주목이 설치되었다. 995년(성종 14)에는 나주진해군절도사(羅州鎭海軍節度使)가 되었다. 1018년(현종 9) 다시 나주목으로 고쳐 5개의 속군(무안·담양·곡성·낙안·남평)과 11개의 속현(철야·반남·안노·복룡·원율·여황·창평·장산·회진·진원·화순)을 거느렸다. 1310년(충선왕 2)에 지주사(知州事)로 강등되었다가 1356년(공민왕 5)에 다시 목으로 승격하였다. 고려·조선시대를 통하여 주로 목(牧), 부(府)로서 전남지역 행정의 중심지를 이루었다. 1895년(고종 32) 지방제도 개정으로 나주부로서 나주군 등을 관할하였고, 1981년 나주읍과 영산포읍이 통합하여 금성시로 승격하여 나주군에서 분리되었고, 금성시는 1985년 나주시로 개칭되었다. 1995년 나주시와 나주군이 통합되어 나주시로 개편되었다.
인구수
통계청의 인구조사에 의하면 나주장씨는
1985년에는 2,640가구 12,429명, 2000년에는 1,170가구 3,662명,
가장 최근인 2015년에는 1,142명으로 조사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