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래
시조 : 장항(張沆)
시조 장항(張沆)의 선대는 알수가 없으며 고려시대에 문과에 급제하고 사헌, 두정을 거쳐 좌사의대부에 올랐다. 고려 충숙왕이 1321년 부터 5년동안 원나라에 양유되었을 때 시종한 공으로 귀국후 나주 목사가 되었고 충혜왕 때 평양윤 등을 지낸뒤 영산(영동)군에 봉해졌으므로 본관을 영동으로 하였다.
- 영동의 화암서원에서 제향한다.
본관 연혁
본관소재지 : 충청북도 영동
영동(永同)은 충청북도 영동군 일원의 지명으로 신라 때에 길동군(吉同郡)이라 불리었이다가 757년(신라 경덕왕 16)에 영동현(永同縣)으로 바꾸어 황간현(黃澗縣)과 양산현(陽山縣)을 관할하였다. 995년(고려 성종 14) 계주(稽州)로 승격되어 자사(刺史)가 파견되었으나, 1005년(목종 8)에 폐지되었다. 1018년(현종 9) 상주(尙州)에 예속되었다가 1172년(명종 2)에 감무가 파견되면서 독립하였다. 1413년(태종 13) 경상도에서 충청도로 이관되었다. 영산(永山)·계산(稽山)등의 별호가 있었다. 1895년(고종 32) 지방제도 개정으로 충주부 영동군(永同郡)이 되었고, 1896년 충청북도 영동군이 되었다. 1914년에 군면 폐합으로 황간군(黃澗郡)이 폐지되어 영동군에 통합되었고 군내 13개 면이 영동면을 비롯한 7개면으로 통합되었다. 1940년 영동면이 읍으로 승격되었다.
인구수
통계청의 인구조사에 의하면 영동장씨는
1985년에는 203가구 1,033명, 2000년에는 477가구 1,409명,
가장 최근인 2015년에는 23명으로 조사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