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즐겨찾기 등록
  • 국내최초 족보 전문사이트 Since 1997
  • 한국인의 뿌리와 전통을 이어갑니다
  • 뿌리를 찾아서는 국내에 현존하는 287개 성씨와 그에 따르는 3천여 개의 본관별 시조와 유래 등 다양한 정보를 제공합니다.
  • www.rootsinfo.co.kr
    성씨의 종류와 유래 성씨의 역사 족보 이야기 친인척 호칭법 국가 연대표 역대왕 연대표 성씨별 인구순위 본관별 인구순위 고사성어


     
    진주장씨(晋州張氏)
    유래
     시조 : 장방언
    시조 장방언은 인진부사를 지냈으며, 후손으로는 1717년(조선 숙종 43년) 장희운의 아들 장두주가 식년문과에 병과로 급제하고 판교군수를 역임하였으며, 장호상의 아들 장영석이 1893년(조선 고종 30년) 정시문과에 병과로 급제하였다.
    과거급제자(조선시대)
     장두주(張斗周, 1683 癸亥生) : 문과(文科) 숙종43년(1717) 식년시 병과(丙科)
     장영석(張永錫, 1874 甲戌生) : 문과(文科) 고종30년(1893) 별시 병과(丙科)
     장붕(張鵬, 1580 庚辰生) : 무과(武科) 인조15년(1637) 별시 병과(丙科)
     장득룡(張得龍, 1584 甲申生) : 무과(武科) 인조15년(1637) 별시 병과(丙科)
     장진봉(張秦封, 1637 丁丑生) : 무과(武科) 현종13년(1672) 별시 병과(丙科)
     장움남(張○男, 1593 癸巳生) : 무과(武科) 인조15년(1637) 별시 병과(丙科)
     장희익(張希益, 1610 庚戌生) : 무과(武科) 인조15년(1637) 별시 병과(丙科)
     장건(張健, 1581 辛巳生) : 무과(武科) 인조15년(1637) 별시 병과(丙科)
     장건두(張建斗, 1713 癸巳生) : 생원진사시(生員進士試) 영조30년(1754) 증광시 삼등(三等)
     장우한(張遇漢, 1615 乙卯生) : 생원진사시(生員進士試) 현종3년(1662) 증광시 삼등(三等)
    * 모두 10명의 과거급제자가 있다.
    (문과 2명, 무과 6명, 생원진사시 2명)
  • ※ 과거급제자는 조선조방목 기록을 기준으로 한 것이므로 실제와 다를 수 있다.
  • 본관 연혁
     본관소재지 : 경상남도 진주
    진주(晉州)은 경상남도 남서쪽에 위치한 지명으로 본래 삼한시대에 소국인 고순시국(古淳是國)이 있었던 곳이다. 백제의 거열성(居烈城)이었고, 신라 문무왕 때 신라의 영토가 되어 거열주(居烈州)라 불리었으며, 757년(신라 경덕왕 16) 9주 5소경제(九州五小京制)의 실시와 함께 강주도독부(康州都督府)로 고쳤다가, 혜공왕 때 청주(菁州)로 개칭되었다. 고려 초에 강주(康州)로 환원되었다. 983년(성종 2) 전국에 12목을 둘 때 진주목이 되었다. 995년(성종 14)에는 정해군(定海軍)이라 하고 절도사(節度使)를 두어 산남도(山南道)에 속하게 하였다. 1012년에 안무사(按撫使)로 고쳤다가, 1018년(현종 9)에 진주목으로 복구되었다. 1310년(충선왕 2)에 진주로 강등되었다가 1356년(공민왕 5)에 다시 진주목으로 회복되었다. 1392년(태조 1)에 진양대도호부(晉陽大都護府)가 되었다가 1402년(태종 2)에 진주목으로 환원되어 조선시대 동안 유지되었다. 1895년(고종 32) 지방제도 개정으로 진주부 진주군이 되었다가, 1896년에 13도제(道制) 실시로 경상남도 진주군이 되었다. 1931년에 진주면이 읍으로 승격하였다. 1939년 진주읍이 시로 승격하면서 나머지 지역이 진양군으로 개칭되었으며, 1995년 진양군이 진주시에 통합되었다.
    인구수
    통계청의 인구조사에 의하면 진주장씨는
    1985년에는 424가구 2,069명, 2000년에는 421가구 1,371명,
    가장 최근인 2015년에는 631명으로 조사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