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래
시조 : 전권(全綣)
시조 전권(全綣)은 도시조 전섭(全聶)의 33세손으로 조선 때 군자감정(軍資監正), 공조정랑(工曹正郞)을 지내고, 형조 참의(刑曹參議)에 추증되었다. 그가 부여에 정착(定着)하였으므로, 후손들이 본관을 부여로 삼아 세계를 이어왔다.
인물
전권(全淃)의 아들 전신지(全信之)는 병마첨절제사를 거쳐 호조참의에 추증되었으며,
손자 전오륜(全五倫)은 성종 때 훈련원정을 역임하였다.
전오륜(全五倫)의 아들로 어모장군(禦侮將軍)을 지낸 전충효(全忠孝)와 통덕랑에 오른 전충성(全忠誠) 형제는 덕망높은 가문의 기틀을 마련하였다.
통덕랑(通德郞)에 오른 전대천(全大天)의 아들 전수화(全秀華)는 가선대부에 이르렀고 전흥빈(全興彬)과 전호경(全好景), 전언신(全彦信) 등은 통정대부에 올라 가문을 중흥시켰다.
절충장군에 오른 전천추(全千秋)와 선략장군으로 부사과를 역임한 전덕묵(全悳默)도 부여전씨를 더욱 빛냈다.
본관 연혁
본관소재지 : 충청남도 부여
부여(扶餘)는 충청남도 부여군 지역의 옛 지명으로 소부리(所夫里: 泗沘)라 불렀고, 백제의 마지막 수도로 660년(백제 의자왕 20)에 나당(羅唐) 연합군에 의해 백제가 멸망하면서 신라에 예속되어 672년(신라 문무왕 12)에 부여도독부가 설치되었으며, 751년(경덕왕 10)에 이르러 부여현(扶餘縣)이라고 개칭되었다. 757년(경덕왕 16)에 부여군으로 고치고 웅주(熊州: 公州) 영현에 두었다. 1018년(고려 현종 9) 공주에 예속되었다가, 1172년(명종 2)에 감무(監務)를 두면서 독립하였다. 이후 부여현으로 조선 말까지 유지되다가 1895년(고종 32) 지방제도 개정으로 공주부 부여군, 1896년에 충청남도 부여군이 되었고, 1914년 군면 폐합으로 홍산현(鴻山縣)·임천군(林川郡) 전역과 석성현(石城縣)·공주군 일부를 편입해서 16개 면으로 부여군이 형성되었다. 1960년 부여면(扶餘面)이 읍으로 승격되었다.
인구수
통계청의 인구조사에 의하면 부여전씨는
1985년에는 34가구 139명, 2000년에는 148가구 473명,
가장 최근인 2015년에는 167명으로 조사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