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래
시조 : 전순(全順)
성주 전씨의 시조인 전순(全順)은 도시조 전섭의 28세손으로 고려 공민왕 때 생원으로 문과에 급제, 공조판서를 지내고 성산백(星山伯)에 봉해졌다. 그래서 후손들이 정선전씨에서 분관해서 성주를 본관으로 하고 있다.
인물
조선시대 형조참의를 지낸 전전중(全殿中)을 비롯하여 부사의 관직에 오른 전환(全煥), 현감 전형(全炯), 이조참판 전찬(全燦), 도사(都事) 전영기(全永期), 의관 전형택(全炳宅), 군자감정 전성달(全聲達), 대호군(大護軍) 전황,판사 전문립(全文立), 별제(別提) 전영담 부호군 전도흥(全道興), 좌승지 전진량(全進良), 판관에 이른 전효관(全孝寬)과 의금부사 전충관(全忠寬), 대호군 전윤영(全胤榮), 오위장(五衛將) 전영완(全永完), 사복사정(司僕寺正) 전진수(全進壽) 그리고 동지중추(同知中樞)를 지낸 전영학(全永學), 부호군 전영필(全永弼) 등은 당대 가문을 빛낸 인물들이었다.
주요 인물
과거급제자(조선시대)
전재봉(全在鳳, 1834 甲午生) : 문과(文科) 철종12년(1861) 식년시 병과(丙科)
전정민(全廷敏, 1638 戊寅生) : 무과(武科) 현종13년(1672) 별시 병과(丙科)
전몽성(全夢星, 1561 辛酉生) : 무과(武科) 선조16년(1583) 별시 병과(丙科)
전계영(全繼英) : 무과(武科) 효종2년(1651) 별시 병과(丙科)
전경(全烱) : 무과(武科) 중종8년(1513) 식년시 병과(丙科)
전상현(全尙賢) : 무과(武科) 효종2년(1651) 별시 병과(丙科)
전장벽(全章擘, 1857 丁巳生) : 생원진사시(生員進士試) 고종28년(1891) 증광시 삼등(三等)
전기성(全基誠, 1819 己卯生) : 생원진사시(生員進士試) 헌종14년(1848) 증광시 삼등(三等)
전이민(全以敏, 1587 丁亥生) : 생원진사시(生員進士試) 인조5년(1627) 식년시 삼등(三等)
* 모두 9명의 과거급제자가 있다.
(문과 1명, 무과 5명, 생원진사시 3명)
※ 과거급제자는 조선조방목 기록을 기준으로 한 것이므로 실제와 다를 수 있다.
본관 연혁
본관소재지 : 경상북도 성주
성주(星州)는 경상북도 남서쪽에 위치하며 6가야연합국의 하나인 성산가야국(星山伽倻國)의 영토였다. 6세기 무렵 신라의 세력권에 들게 되어 벽진군(碧珍郡) 또는 본피현(本彼縣)이라 하다가 757년(신라 경덕왕 16)에 신안현(新安縣)으로 개칭하여 성산군(星山郡)에 속하였다. 940년(고려 태조 23) 경산부(京山府)로 승격하였다가 980년(경종 6)에 광평군(廣平郡)으로 강등하여 개칭되었다. 995년(성종 14) 대주(岱州)로 바뀌어 도단련사(都團練使)를 두었으며 1018년(현종 9)에는 다시 경산부로 환원되었다. 1295년(충렬왕 21)에 와서는 흥안도호부(興安都護府)를 두어 성주목(星州牧)으로 승격하였으나, 1310년(충선왕 2) 다시 경산부로 강등되었다. 1413년(태종 13)에 성주목으로 승격되었다가 이후 1616년(광해군 9)에는 신안군으로, 1631년(인조 1)에는 신안현으로 개칭되어 강등되기도 하였다. 1895년(고종 32) 지방제도 개정으로 대구부 성주군이 되었고, 1896년에는 경상북도 성주군으로 개편되었다. 1914년 군면 폐합 때 관할면이 성주·벽진면 등 9개면으로 폐합되었고, 1979년에 성주면이 읍으로 승격하였다.
인구수
통계청의 인구조사에 의하면 성주전씨는
1985년에는 1,331가구 5,469명, 2000년에는 1,410가구 4,654명,
가장 최근인 2015년에는 8,134명으로 조사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