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즐겨찾기 등록
  • 국내최초 족보 전문사이트 Since 1997
  • 한국인의 뿌리와 전통을 이어갑니다
  • 뿌리를 찾아서는 국내에 현존하는 287개 성씨와 그에 따르는 3천여 개의 본관별 시조와 유래 등 다양한 정보를 제공합니다.
  • www.rootsinfo.co.kr
    성씨의 종류와 유래 성씨의 역사 족보 이야기 친인척 호칭법 국가 연대표 역대왕 연대표 성씨별 인구순위 본관별 인구순위 고사성어


     
    완산전씨(完山全氏, 전주)
    유래
     시조 : 전집(全潗)
    시조 전집(全潗)은 도시조 전섭(全攝)의 30세손으로 시호는 충정이다. 전집은 1361년(고려 공민왕 10) 중랑장으로 두차례에 걸쳐 홍건적을 물리친 공으로 추충정난공신(推忠靖扈亂聖功臣)이 되어 완산군(完山君)에 봉해지고 그후 삼중대광첨의 문하시중 평장사(三重大匡僉議門下侍中平章事)에 추증 되었다. 그래서 후손들이 정선전씨에서 분관하여 완산을 본관으로 해서 대를 계승하고 있다.
    인물
    전치원(全致遠)은 1606년(선조 39) 사헌부감찰, 충무위부사과(忠武衛副司果)를 거쳐 춘추관기사관으로 "선조실록" 편찬에 참여했다. 그는 서예와 성리학에 능통했고 저서로는 임진난이록(壬癸亂離錄)이 전한다.

    전우(全雨)는 1592년 임진왜란 때 창의(倡義)하여 공을 세우고 중임도찰방(重林道察訪)에 발탁되었으며 사헌부지평(司憲府持平)에 추증되었다.

    전형(全鎣)은 서예로 일가를 이루었고 진사시에 합격하였다. 1636년 통신사 임광(任侊)을 수행, 일본에 건너가서 글씨로 이름을 떨쳤으며, 1647년(인조 25) 김해의 가락국 김수로왕(駕洛國金首露王) 비문을 썼다. 저서로는 "해사일기"가 전한다.

    전준은 1592년 임란이 일어나자 창의하여 각처에서 많은 적을 죽이고 삼학진(三鶴陣)에서 왜병의 기습을 받아 역전하다가 순절하였다. 1638년 8읍 사림이 장문(狀文)을 연정하여 호조참판에 추증되었다. 또한 전문도 난이 일어나자 창의하여 의병을 이끌고 각처에서 공을 세우다 순절하였다.

    그리고 전홍칠(全弘七)은 효성이 지극하여 부모의 공양에 극진하였는데 15세 때 부친의 상을 당하여 아우 전홍팔(全弘八)과 함께 여막에서 거상(居喪)하니 범이 와서 호위해 주었고, 용천(涌泉)이 출중하였다.

    전두환(全斗煥) : 대한민국 제11,12대 대통령(재임 1980~1988)을 지냈다.
    주요 인물
    과거급제자(조선시대)
     전대길(全大吉) : 생원진사시(生員進士試) 영조30년(1754) 증광시 삼등(三等)
     전천표(全天杓, 1627 丁卯生) : 역과(譯科) 효종2년(1651) 식년시 ()
    * 모두 2명의 과거급제자가 있다.
    (생원진사시 1명, 역과 1명)
  • ※ 과거급제자는 조선조방목 기록을 기준으로 한 것이므로 실제와 다를 수 있다.
  • 세거지
    - 경상남도 하동군 근산면 진정리
    - 경상남도 합천군 쌍책면 건태리
    - 경상남도 합천군 쌍책면 서양리
    - 경상남도 합천군 쌍책면 상신리
    - 경상남도 합천군 쌍책면 하신리
    - 전라남도 광양시 광양읍 우산리
    - 평안남도 대동군 용산면 금촌리
    - 황해도 곡산군 하도면 황천리
    항렬자
    47世
    형(鎣)
    48世
    우(雨)
    49世
    인(寅)
    50世
    병(炳)
    51世
    영(瑛)
    52世
    탁(鐸)
    53世
    제(濟)
    54世
    표(杓)
    55世
    찬(燦)
    56世
    재(宰)
    57世
    상(商)
    58世
    구(求)
    59世
    계(桂)
    60世
    휴(烋)
    61世
    규(珪)
    62世
    태(兌)
    63世
    한(翰)
    64世
    목(穆)
    65世
    형(炯)
    66世
    순(珣)
    67世
    용(鏞)
    68世
    준(濬)
    69世
    장(樟)
    70世
    도(燾)
    71世
    정(珽)
    72世
    일(鎰)
    73世
    홍(泓)
    74世
    환(桓)
    75世
    희(火義)
    76世
    선(璿)
    77世
    훈(金義)
    78世
    흡(洽)
    79世
    기(杞)
    80世
    효(火高)
    81世
    배(培)
    82世
    옥(鈺)
    83世
    -
    84世
    -
    85世
    -
    86世
    -
  • ※ 世와 代는 다른 것으로 世에서 1을 뺀 값이 代가 된다. (예: 48世孫은 47代孫)
  • 본관 연혁
     본관소재지 : 전라북도 전주
    완산(完山)은 전주(全州)의 옛 지명이다. 전주는 전라북도 중앙에 위치한 지명으로 고대 마한(馬韓)의 원산성(圓山成)에서 유래하며, 백제시대에 완산(完山) 또는 비사벌(比斯伐)·비자화(比自火) 등으로 불렸다가, 555년(위덕왕 2)에 완산주(完山州)로 하였다. 757년(신라 경덕왕 16)에 완(完)을 의역(意譯)하여 전주(全州)로 고쳤고, 900년(효공왕 4)에 견훤(甄萱)이 무주(武州: 光州)로부터 이곳으로 후백제의 도읍을 옮겨 백제 부흥의 노력을 하였다. 936년(고려 태조 19)에 후백제가 망하자 안남도호부(安南都護府)가 설치되었다가 940년에 다시 전주로 회복되었다. 983년(성종 2)에 12목 가운데의 하나인 전주목이 설치되었으며, 993년에 승화(承化)로 개칭하고 절도안무사(節度安撫使)를 두었다. 995년에는 강남도(江南道) 관하의 전주순의군절도사(全州順義軍節度使)가 되었다가 1018년(현종 9)에 다시 안남대도호부로 승격되고, 1022년에 전주목으로 개칭되어 1곳의 속군과 11곳의 속현을 포함하는 큰 고을이 되었다. 1310년(충선왕 2)에 전주로 강등되고, 1355년(공민왕 4)에는 부곡으로 강등되었다가 이듬해에 완산부(完山府)로 복구되었다. 1392년(태조 1)에 전주이씨의 본향지라 하여 완산부유수(完山府留守)로 승격되었으며, 1403년(태종 3)에 전주부(全州府)로 개칭되어 조선시대 동안 유지되었다. 1895년(고종 32) 지방제도 개정으로 전주부 전주군이 되었고, 1896년 전라북도 전주군으로 개편된 이래 1935년 전주면이 부로 승격하여 독립하고 1949년 전주시로 개칭되었다.
    인구수
    통계청의 인구조사에 의하면 완산전씨는
    1985년에는 1,733가구 6,811명, 2000년에는 2,526가구 7,568명,
    가장 최근인 2015년에는 1,753명으로 조사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