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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정선전씨(旌善全氏)
유래
시조 : 전섭(全聶)
시조 전섭(全聶)은 백제 개국공신이다. 그는 고구려 동명왕의 세째 아들 온조(溫祚)가 부여에 도읍을 정하고 백제를 건국할때 오간(烏干), 을음(乙音)등과 함께 온조를 도운 10명의 공신중의 한사람으로 후에 환성군(歡城君)에 봉해졌다. 그러나 삼국통일의 전란속에 전섭의 후손에 관한 기록은 7세에 걸쳐 소멸되었다. 8세손 전선(全愃)은 신라 성덕왕 22년 당나라에 입국하여 중국의 문물을 국내에 소개한 인물이다. 후에 벼슬이 전법(典法)판서에 오르고 정선군(旌善君)에 봉해졌다. 그래서 후손들이 전섭을 시조로 하고 전선(全愃)을 득관중시조로하고 있다. 인물
전씨는 역사깊은 명문벌족으로 신라, 고려시대를 통틀어 군(君)에 봉해진 사람이 35명, 정승 12명, 판서 43명을 배출했으며 조선시대에는 문과급제자만 57명을 배출했다.
이러한 전씨문중에서 특히 고려개국 삼충공(三忠公)인 전이갑(全以甲), 전락(全樂)등 3형 제를 빼놓을수 없다. 이들은 후삼국 통일의 야망을 키우던 왕건이 팔공산 오동숲에서 후백제 견훤의 군사와 일대 접전을 벌이다 적에게 포위를 당하자 전이갑이 왕건으로 가장하여 적의 주력부대를 유인하여 왕건을 탈출시키고 3형제는 최후까지 싸우다 장렬하게 전사 한다. 이밖에도 정선아리랑의 작가 전오륜(全五倫)과 고려왕가에 충절을 지킨 고려말 공조판서 전순(全順)과 병부상서에 올랐던 전신(全信)등이있다. 조선말기의 동학혁명에서 불붙기 시작한 민중혼은 일제의 암흑기에 이르러 숱한 독립투사를 배출한다. 안창호선생과 신민회를 조직,적극적으로 배일(排日)운동을 벌였던 전덕기와 의병장 전덕원 등이 그들이다. 주요 인물
과거급제자(조선시대)
전효우(全孝宇) : 문과(文科) 세종29년(1447) 친시 정과(丁科)
전재덕(全在悳, 1861 辛酉生) : 문과(文科) 고종30년(1893) 별시2 병과(丙科) 전공간(全公侃) : 문과(文科) 중종12년(1517) 별시 병과(丙科) 전도해(全道海, 1779 己亥生) : 문과(文科) 순조19년(1819) 식년시 병과(丙科) 전의채(全義采, 1710 庚寅生) : 문과(文科) 영조20년(1744) 식년시 을과(乙科) 전백령(全栢齡, 1705 乙酉生) : 문과(文科) 영조41년(1765) 식년시 병과(丙科) 전좌천(全佐天, 1741 辛酉生) : 문과(文科) 영조44년(1768) 식년시 병과(丙科) 전영덕(全永悳, 1873 癸酉生) : 문과(文科) 고종25년(1888) 식년시 을과(乙科) 전승길(全承吉, 1605 乙巳生) : 무과(武科) 인조15년(1637) 별시 병과(丙科) 전의남(全義男, 1589 己丑生) : 무과(武科) 인조15년(1637) 별시 병과(丙科) 등 모두 47명의 과거급제자가 있다. (문과 8명, 무과 15명, 생원진사시 22명, 역과 1명, 율과 1명) 항렬자
본관 연혁
본관소재지 : 강원도 정선
정선(旌善)은 강원도 남동부에 위치하는 지명이다. 본래 고구려 지역으로 668년(보장왕 27) 잉매현(仍買縣)이라 하였다. 757년(신라 경덕왕 16) 정선이라 개칭하여 명주(溟州: 江陵)의 영현(領縣)이라 하였다. 1018년(고려 헌종 9) 그대로 명주의 속현으로 하였다가 정선군으로 승격되어 조선시대까지 유지하였다. 1895년(고종 32) 지방제도 개정으로 충주부(忠州府) 정선군이 되었고, 1896년 도제(道制) 실시에 따라 다시 강원도 정선군으로 환원되었다. 1973년에 정선면과 동면 사북출장소, 1980년에 신동면이 읍으로 승격하였다. 1985년에는 사북읍이 고한읍과 사북읍으로 분리되었다. 인구수
통계청의 인구조사에 의하면 정선전씨는
1985년에는 30,623가구 124,993명, 2000년에는 44,316가구 141,380명, 가장 최근인 2015년에는 166,965명으로 조사되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