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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천안전씨(天安全氏)
    유래
     시조 : 전섭(全聶)
    시조 전섭(全聶)은 온조왕이 백제를 개국할 때 오간(烏干), 마경(馬?), 을음(乙音), 해루(解婁), 흘간(屹干), 곽충(郭忠), 한세기(韓世奇) 등 9사람과 함께 개국에 공을 세우고 십제공신(十濟功臣)으로 환성(歡城, 천안의 별호)군에 봉해져 후손들이 본관을 천안으로 하고 16세손 전낙을 중시조로 한다.

    - 천원군 풍세면 삼대리에 단(壇)을 만들고 음력10월 1일 향사한다.
    인물
    고려 충숙왕때의 전신(全信)은 진현관대제학(進賢館大提學), 동지밀직사사(同知密直司事)를 지냈으며 백이정, 이제현(李齊賢) 등 당시의 석학들과 교분이 두터웠다. 조선 선조36년 무과에 급제한 전상의(全尙毅)는 여러 벼슬을 거쳐 인조 5년 정묘호란 때 구성부사로서 안주성(安州城)을 지키다가 순절했다. 전동흘(全東屹)은 효종 때 무과에 급제해 특히 용병에 능하여 이상진(李尙眞), 소두산(蘇斗山)과 함께 삼걸(三傑)이라 불렀으며 현종때 7도의 병마절도사를 역임하고 숙종때는 훈련대장(訓鍊大將)등을 지냈는데 통영(統營)에 생사당(生祠堂)이 세워지기까지 했다. 전동흘(全東屹)은 철산부사 시절에 장화와 홍련의 원한을 풀어준 일화로도 유명하다.

    조선말기의 녹두장군 전봉준은 이땅에 최초로 자유민주주의의 싹을 트게한 동학혁명의 지도자이다. 그는 삼충공의 한 사람인 전락의 후손으로 그의 아버지가 민란의 주모자로 처형되자 사회개혁을 결심하고 30세때 동학에 입문하여 고부접주(古阜接主)가 된다. 그리고 당시 고부군수 조병갑(趙秉甲)의 학정에 백성의 고통 받자 보다 못해 동학혁명을 일으켜 백성이 나라의 주인임을 일깨워준다. 처음에는 계속 승전하여 전주를 점령하고 크게 전세를 떨쳤으나 정부의 요청으로 청군이 들어오고, 천진조약(天津條約)을 빙자해 일본군도 입국하자 이천, 목천, 공주의 혈전에서 패배하고, 현상금을 탐낸 한신현(韓信賢)등의 지방민에 의해 붙잡혀 서울로 압송되어 사형당했다.
    주요 인물
    과거급제자(조선시대)
     전종행(全宗行, 1788 戊申生) : 문과(文科) 순조34년(1834) 식년시 병과(丙科)
     전영수(全永壽, 1723 癸卯生) : 문과(文科) 영조22년(1746) 별시2 병과(丙科)
     전영달(全穎達, 1550 庚戌生) : 문과(文科) 선조10년(1577) 별시 병과(丙科)
     전영택(全榮澤, 1776 丙申生) : 문과(文科) 순조28년(1828) 식년시 병과(丙科)
     전경성(全敬誠) : 무과(武科) 효종2년(1651) 별시 병과(丙科)
     전익대(全翊戴, 1640 庚辰生) : 무과(武科) 현종13년(1672) 별시 병과(丙科)
     전여한(全汝翰, 1630 庚午生) : 무과(武科) 현종1년(1660) 식년시 을과(乙科)
     전성효(全聖孝, 1648 戊子生) : 무과(武科) 숙종4년(1678) 증광시 병과(丙科)
     전확(全○, 1659 己亥生) : 무과(武科) 숙종10년(1684) 정시 병과(丙科)
     전대길(全大吉, 1596 丙申生) : 무과(武科) 인조15년(1637) 별시 병과(丙科)
    등 모두 31명의 과거급제자가 있다.
    (문과 4명, 무과 10명, 생원진사시 17명)
  • ※ 과거급제자는 조선조방목 기록을 기준으로 한 것이므로 실제와 다를 수 있다.
  • 항렬자
    52世
    용(用)
    53世
    원(元)
    54世
    상(尙)
    55世
    래(來)
    56世
    무(茂)
    57世
    범(範)
    58世
    상(庠)
    59世
    재(宰)
    60世
    정(廷)
    61世
    옥(沃)
    62世
    위(胃)
    63世
    욱(旭)
    64世
    남(南)
    65世
    우(雨)
    66世
    성(晟)
    67世
    기(起)
    68世
    강(康)
    69世
    장(章)
    70世
    -
    71世
    -
  • ※ 世와 代는 다른 것으로 世에서 1을 뺀 값이 代가 된다. (예: 53世孫은 52代孫)
  • 본관 연혁
     본관소재지 : 충청남도 천안
    천안(天安)은 본래 마한의 땅이었고, 백제의 대록군(大麓郡)과 감매현(甘買縣)·순치현(馴雉縣)이었다가 고구려의 사산현(蛇山縣) 지역이 되었고, 통일신라시대에는 대록과 백성군(白城郡)의 영현이었다. 930년(고려 태조 13)에 3국의 요충지라 하여 천안부(天安府)로 개칭하였고, 군병을 주둔시켜 도독(都督)을 두었다. 목종 때 이를 폐지하였다가 1018년(현종 9)에 천안군이 되어 지사부(知事府)를 두어 1개의 속군과 직산 등 7개의 속현을 거느리는 큰 고을이 되었다. 1310년(충선왕 2)에 천안을 영주(寧州)로 고쳤고, 1362년(공민왕 11)에는 다시 천안부로 개칭하였다. 1413년(태종 13) 영산군(寧山郡)으로 고쳤고, 1416년 다시 천안군으로 개칭하고 문종 때 명산(明山)으로 불렀다. 1895년(고종 32) 지방제도 개정으로 공주부 천안군이 되었고, 1896년 충청남도에 속하였다. 1914년 군면 폐합으로 목천군·병천군을 합하여 천안군이라 불렀고, 1963년 천안읍과 환성면이 합쳐져 천안시로 분리되었다. 1995년 천안군이 천안시에 통합되었다.
    인구수
    통계청의 인구조사에 의하면 천안전씨는
    1985년에는 27,193가구 114,016명, 2000년에는 40,740가구 133,074명,
    가장 최근인 2015년에는 176,239명으로 조사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