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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팔거전씨(八莒全氏)
유래
시조 : 전원태(全元台)
시조 전원태(全元台)는 도시조 전섭의 25세손으로 고려 충렬왕 때 합단군(哈丹軍)이 침입하자 이를 물리친 공으로 팔거군(현재의 칠곡)에 봉해졌다. 그래서 그의 후손들이 정선전씨에서 분관하여 본관을 팔거로 하고 있다. 인물
고려시대에 전법판서(典法判書)를 지낸 전대(全代)를 비롯하여 도수(都守)를 지낸 전광옥(全光玉),조선시대에 선전관을 지낸 전윤후(全胤後), 지평(持平)을 지낸 전응용(全應龍) 등 관 직자를 많이 배출하면서 가문의 기강을 세웠다. 전철활(全哲活)은 조선시대에 충훈부도사(忠勳府都事)를 지냈고, 전영활(全榮活)은 중추원의관(中樞院議官)을 지냈으며, 전희택(全希宅)은 공조참판, 전성하(全性夏)는 훈련원도정(訓鍊院都正)을 역임하였다.
항렬자
본관 연혁
본관소재지 : 대구광역시
팔거(八莒)는 대구광역시 북구에 위치하였던 고려 초기의 지명으로 본래 팔거리현(八居里縣: 仁里)이라 하였다. 757년(신라 경덕왕 16)에 팔리현(八里縣)으로 고쳐서 수창군(壽昌郡: 大邱)의 속현이 되었다. 고려 초에 다시 팔거현(八居縣)으로 고쳤다가 뒤에 거(居)의 음이 전하여 거(莒)로 변하였다. 1018년(현종 9) 경산부(京山府: 星州)에 속하여 별호를 칠곡(七谷)이라 하였다. 1640년(인조 18) 가산(加山)에 산성을 쌓아 도호부(都護府)를 두어 고을 이름을 칠곡(七谷)이라 하였다. 1819년(순조 19) 가산산성에 있던 관아를 평지인 팔거현 옛자리로 옮겨 칠곡읍의 터를 잡게 되었으며, 1981년 칠곡읍 일원이 대구광역시에 편입되었다. 다만 현재의 칠곡군과는 차이가 있다. 인구수
통계청의 인구조사에 의하면 팔거전씨는
1985년에는 55가구 323명, 2000년에는 34가구 115명, 가장 최근인 2015년에는 0명으로 조사되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