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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영성정씨(靈城丁氏, 영광)
    유래
     시조 : 정진(丁晋)
    시조 정진(丁晋)은 고려 때 태학생원(太學生員)을 지냈다. 정진은 정덕성(丁德盛)의 큰아들 정열도(丁烈道)의 후손이다.

    정진의 손자 정찬(丁贊)이 공민왕 때 영성군(靈城君)에 봉해졌으므로 후손들이 영성을 본관으로 삼게되었다.
    인물
    정극인(丁克仁)은 1453년 문과에 급제하여 정언(正言)에 이르렀으나 단종이 왕위를 빼앗기자 사직하고서 태인(泰仁)에 가서 후진 양성에 노력하였다. 그 공으로 3품교관(品敎官)이 되었다. 문학에도 특출한 재능을 나타내어 한국문학사상 최초의 가사(歌辭) 작품인 "상춘곡(賞春曲)"을 지었다.
    주요 인물
    과거급제자(조선시대)
     정재화(丁載和, 1787 丁未生) : 생원진사시(生員進士試) 순조25년(1825) 식년시 이등(二等)
     정일화(丁一和, 1793 癸丑生) : 생원진사시(生員進士試) 순조14년(1814) 식년시 삼등(三等)
     정재화(丁在和, 1795 乙卯生) : 생원진사시(生員進士試) 순조19년(1819) 식년시 삼등(三等)
    * 모두 3명의 과거급제자가 있다.
    (생원진사시 3명)
  • ※ 과거급제자는 조선조방목 기록을 기준으로 한 것이므로 실제와 다를 수 있다.
  • 본관 연혁
     본관소재지 : 충청남도 천안
    영성(靈城)은 충청남도 천안시(天安市)의 옛 지명으로 본래는 마한의 땅이었고, 삼굮시대에 백제때는 대록군(大麓郡)과 감매현(甘買縣)·순치현(馴雉縣)이었다가 고구려 때는 사산현(蛇山縣) 지역이 되었고, 통일신라 때에는 대록과 백성군(白城郡)의 영현이었다. 930년(고려 태조 13)에 3국의 요충지라 하여 천안부(天安府)로 개칭하고 군병을 주둔시켜 도독(都督)을 두었다. 목종 때 이를 폐지하였다. 1018년(현종 9)에 천안군이 되어 1개의 속군과 직산 등 7개의 속현을 거느리는 큰 고을이 되었다. 1310년(충선왕 2)에 천안을 영주(寧州)로, 1362년(공민왕 11)에는 다시 천안부로 개칭하였다. 1413년(태종 13) 영산군(寧山郡)으로, 1416년 다시 천안군으로 개칭하고 문종 때 명산(明山)으로 불렀다. 1895년(고종 32) 지방제도 개정으로 공주부 천안군이 되었고, 1896년 충청남도에 속하였다. 1914년 군면 폐합으로 목천군·병천군을 합하여 천안군이라 불렀고, 1963년 천안읍과 환성면이 합쳐져 천안시로 분리되었다. 1995년 천안군이 천안시에 통합되었다. 2003년 현재 성환읍·성거읍·직산읍·목천읍과 광덕면·동면·병천면·북면·성남면·수신면·입장면·풍세면 및 봉명동·중앙동·성정1∼2동·문성동·원성1∼2동·쌍용1∼2동·신용동·청룡동·신안동·부성동의 4읍 8면 13동으로 이루어져 있다.
    인구수
    통계청의 인구조사에 의하면 영성정씨는
    1985년에는 2,049가구 8,510명, 2000년에는 3,279가구 10,429명,
    가장 최근인 2015년에는 18,592명으로 조사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