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래
시조 : 정연방(丁衍邦), 정관(丁寬)
창원정씨는 선창원파(先昌原派)와 후창원파(後昌原派)의 양파로 나뉘어진다.
선창원정씨는 고려 때 상호군(上護軍)을 지낸 정연방(丁衍邦)을 중시조로 하고 있다. 그의 선조인 정필진(丁必珍)이 고려에 공이 있어 의창군(義昌君)에 봉해져 후손들이 창원에 세거하게 되었다. 그 후 19세손인 정연방이 출세하자 그를 중시조로 삼고 본관을 창원으로 하였다.
후창원정씨는 고려 공민왕 때 정난일등공신(靖難一等功臣)에 오른 정관(丁寬)을 중시조로 하고 있다. 그 후 창원군(昌原君)에 봉해져 후손들이 본관을 창원으로 하고 후창원정씨라 하였다. 후창원파가 된 연유는 정관과 정연방이 같은 23세손인데, 정필진의 득관조가 3세손이기 때문이라 한다.
주요 인물
과거급제자(조선시대)
정창협(丁昌夾, 1798 戊午生) : 문과(文科) 헌종11년(1845) 별시 갑과(甲科) 장원급제
정환(丁煥, 1497 丁巳生) : 문과(文科) 중종23년(1528) 별시 을과(乙科)
정황(丁○, 1512 壬申生) : 문과(文科) 중종31년(1536) 친시 병과(丙科)
정염(丁焰, 1524 甲申生) : 문과(文科) 명종15년(1560) 별시 을과(乙科)
정봉칠(丁逢七, 1598 戊戌生) : 무과(武科) 인조15년(1637) 별시 병과(丙科)
정난생(丁難生, 1592 壬辰生) : 무과(武科) 인조15년(1637) 별시 병과(丙科)
정명(丁明) : 생원진사시(生員進士試) 세종29년(1447) 식년시 이등(二等)
정호삼(丁好三, 1767 丁亥生) : 생원진사시(生員進士試) 정조22년(1798) 식년시 이등(二等)
정극경(丁克慶, 1839 己亥生) : 생원진사시(生員進士試) 고종31년(1894) 식년시 이등(二等)
정염(丁焰) : 생원진사시(生員進士試) 명종4년(1549) 식년시 일등(一等)
등 모두 18명의 과거급제자가 있다.
(문과 4명, 무과 2명, 생원진사시 12명)
※ 과거급제자는 조선조방목 기록을 기준으로 한 것이므로 실제와 다를 수 있다.
본관 연혁
본관소재지 : 경상남도 창원
창원(昌原)은 경상남도 남쪽에 위치하는 산업도시이며 도청소재지이다. 고대에는 금관가야(金官伽倻)에 속했으나 신라가 세력을 확장함에 따라 굴자군(屈自郡)이 설치되었다. 757년(신라 경덕왕 16)에 의안군(義安郡)으로 이름을 바꾸고, 합포현(合浦縣: 馬山)·웅신현(熊神縣: 熊川)·칠제현(漆隄縣: 漆原)을 영현으로 관할하였다. 1018년(고려 현종 9)에 금주(金州: 金海)의 속현으로 병합되었다가 뒤에 감무가 파견되면서 독립되었다. 1274년(원종 15)과 1281년(충렬왕 7)에 원나라와 고려 연합군의 일본 정벌 때 창원지방은 합포를 중심으로 연합군의 기지가 되었다. 그 공으로 1282년에 의안군이 의창현(義昌縣)으로, 합포현이 회원현(會原縣)으로 승격되었다. 1408년(태종 8)에 회원현을 병합하여 창원부(昌原府)로 승격되고 경상우도 병마절도사영이 설치되었으며, 1413년에는 창원도호부(昌原都護府)가 되었다. 임진왜란 직후인 1601년(선조 34)에 창원대도호부로 승격되었고, 1603년(선조 36)에 경상우도 병마절도사영이 진주로 옮겨갔다. 1661(현종 2)~70년(현종 11)에 현으로 강등되기도 하였다. 1895년(고종 32) 지방제도 개정으로 진주부 창원군이 되었고, 1896년에 경상남도 창원군이 되었다. 1914년 군면 폐합으로 창원군에 다시 편입되었다. 1980년에 마산시 의창동을 편입하여 창원시로 분리 승격되었다.
인구수
통계청의 인구조사에 의하면 창원정씨는
1985년에는 3,390가구 14,787명, 2000년에는 4,989가구 16,141명,
가장 최근인 2015년에는 31,687명으로 조사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