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래
시조 : 정사조(程思祖)
시조 정사조(程思祖)의 조상은 먼옛날 중국 황제 헌원씨(軒轅氏)로 거슬러 올라간다.
황제의 후손 백부(伯符)가 원조이며 백부의 45세손 원담(元潭)이 신안정씨의 중시조이다. 그리고 원담의 31세손인 정우(程羽)가 하남정씨로 분관하였다.
정우의 18세손인 정사조는 원나라 노국공주(공민왕비)가 우리나라에 입국할 때 공한림(孔翰林) 등 20여명과 함께 우리나라에 들어와 고려 충정왕 때 전중시어사(殿中侍御史)를 지내고 공민왕 원년에 추성보리공신 벽상삼한 삼중대광(推誠輔理功臣 壁上三韓 三重大匡)으로 한산군에 봉해졌으며 식읍을 하사받았다.
그래서 후손들은 정사조를 동래시조로 하고 중국 하남정씨의 계통를 그대로 계승 하고 있다.
인물
고려시대에 중군부사정(中軍副司正)을 지낸 정유덕(程有德)을 비롯하여 전중판(殿中判) 시사(侍史)를 지낸 정광(程廣), 판윤(判尹)을 지낸 정유연(程有連), 부사(府使)의 정유통(程有通), 소용장군(昭勇將軍)의 정급 등의 인물이 있다.
조선시대에 봉사(奉事)를 지낸 정화곤, 동몽교관(童蒙敎官)을 지낸 정광현(程光縣) 찰방을 지낸 정우점(程友點) 등 많은 관직자를 배출하면서 가문의 기틀을 세웠다.
정득운(程得雲)은 조선 선조 때의 인물로 천성이 충절하고 지용이 절륜하며 재예가 출중하였다. 일찌기 병서를 습득하여 호방(虎榜)에 등제(登第)하고 의흥위부장(義興尉部將)이 되어 도이지변(島夷之變)에 의병을 모집하여 순천, 광양 등지에서 전공을 세웠다. 그러나 중과부적으로 전사했는데 선조 33년에 선무원종공신(宣武原從功臣)으로 책록, 병조판서에 추증되었다.
정득원(程得元)은 조선 선조 때의 인물로서 일찌기 경서와 병서를 습득하여 1588년 형제가 무과에 급제하고 의흥위부장(義興尉部將)과 수문장(守門將)을 역임하였다. 임진왜란 때 형과 함께 순천, 광양 등지에서 전공을 세우고 전사했는데 1600년에 선무원종공신(宣武原從功臣)에 책록, 정현대부 병조판서에 추증되었다.
정억강(程億綱)은 임진왜란 때 호군으로 충주 달천에서 순절, 1605년에 병조판서에 추증되었다.
정춘한(程春漢)은 선조 때 문과에 급제하고, 삼례찰방(三禮察訪), 풍천현감을 거쳐 공조참판에 이르렀다.
과거급제자(조선시대)
정문섭(程汶燮, 1848 戊申生) : 생원진사시(生員進士試) 고종7년(1870) 식년시 삼등(三等)
* 모두 1명의 과거급제자가 있다.
(생원진사시 1명)
※ 과거급제자는 조선조방목 기록을 기준으로 한 것이므로 실제와 다를 수 있다.
세거지
-전남 담양군 봉산면 대추리
-전남 화성군 도곡면 신덕리
본관 연혁
본관소재지 : 중국(中國) 하남성(河南省)
하남(河南)은 중국 화북지구(華北地區) 남부에 위치하는 지명이다. 북쪽은 하북(河北), 북동쪽은 산동(山東), 동쪽은 안휘(安徽), 남서쪽은 호북(湖北), 서쪽은 섬서(陝西), 북쪽은 산서(山西)의 각 성(省)과 접하고 있다. 황하 중류 이남을 차지하며 북·서·남부는 산지로 쌓이고, 동방 평야에는 북에 황하, 남에 회하(淮河)가 흘러 수륙 교통이 편리하고 옛 부터 한(漢) 민족의 활동 중심지였기 때문에 중원(中原)이라고도 한다.
인구수
통계청의 인구조사에 의하면 하남정씨는
1985년에는 1,906가구 8,049명, 2000년에는 2,355가구 7,766명,
가장 최근인 2015년에는 8,168명으로 조사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