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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성씨의 종류와 유래 성씨의 역사 족보 이야기 친인척 호칭법 국가 연대표 역대왕 연대표 성씨별 인구순위 본관별 인구순위 고사성어


     
    봉화정씨(奉化鄭氏)
    유래
     시조 : 정공의(鄭公義)
    시조 정공의(鄭公義)는 고려 초기에 정의대부 호부령(正議大夫戶部令)을 지내고 983년(성종 2년) 전국에 12목을 두게 되면서 호장이 되었다. 그의 5 세손 정도전(鄭道傳)이 창왕을 폐하고 공민왕을 추대하여 좌명공신이 되고 봉화현 충의군(忠義君)에 봉해졌으며, 태조 이성계의 조선개국에 공이 커 다시 봉화백에 봉해졌다.
    그래서 후손들이 본관을 봉화로 하였다.
    인물
    고려 때 정영걸(鄭英桀)은 밀직부사가 되었으며 정균(鄭均)은 검교군기감정(檢校軍器監正)이 되었고, 정운경(鄭云敬)은 충숙왕 때 문과에 급제하고 충혜왕 때 지밀성사(知密城事)을 거쳐 복주판관에 전임되고 공민왕 때 전주목사를 거쳐 검교밀직제학(檢校密直提學)에 이르렀다.

    조선시대에 들어와서 정도복(鄭道復)은 한성판윤이 되었고, 정진(鄭津)은 세종 때 충청도 관찰사가 되고 이듬해 판한성부사로 성절사(聖節使)가 되어 명나라에 다녀와서 평안도 관찰사를 거쳐 1423년 공조판서, 1425년 형조판서에 이르렀다.
    정문형(鄭文炯)은 세종 29년 여러관직을 거쳐 이조, 형조 판서를 역임하였고 연산군 때 우의정에 승진했다.
    정도전(鄭道傳)은 조선왕조의 개국공신으로 문하시랑찬성사가 되어 명나라에 다녀와 태조 3년 한양천도를 실현하고 이듬해 명나라와 실력으로 항쟁할 것을 주장하고 군비확보에 전력하였다. 또한 그는 척불숭유(斥佛崇儒)를 국시로 삼게 하여 유학의 발전을 기했으며 글씨에도 뛰어났다.
    이외에도 정숙은(鄭叔垠)은 부사, 정국로(鄭國老)는 군수, 정효종(鄭孝宗)은 현감을 지내면서 선정을 베풀어서 이름을 떨쳤다.
    주요 인물
    과거급제자(조선시대)
     정응철(鄭應哲, 1843 癸卯生) : 문과(文科) 고종4년(1867) 별시 을과(乙科)
     정유제(鄭維悌, 1624 甲子生) : 문과(文科) 현종4년(1663) 식년시 병과(丙科)
     정굉(鄭○) : 문과(文科) 중종2년(1507) 식년시 병과(丙科)
     정문경(鄭文烱, 1427 丁未生) : 문과(文科) 세종29년(1447) 친시 정과(丁科)
     정유석(鄭維錫, 1646 丙戌生) : 문과(文科) 숙종17년(1691) 증광시 을과(乙科)
     정유설(鄭維卨, 1649 己丑生) : 문과(文科) 현종14년(1673) 식년시 병과(丙科)
     정석상(鄭錫祥, 1736 丙辰生) : 문과(文科) 영조45년(1769) 정시2 병과(丙科)
     정인경(鄭仁烱) : 문과(文科) 세조11년(1465) 춘당대시 정과(丁科)
     정부흥(鄭復興, 1582 壬午生) : 무과(武科) 선조38년(1605) 증광시 병과(丙科)
     정익신(鄭益信, 1603 癸卯生) : 무과(武科) 인조15년(1637) 별시 병과(丙科)
    등 모두 30명의 과거급제자가 있다.
    (문과 8명, 무과 6명, 생원진사시 16명)
  • ※ 과거급제자는 조선조방목 기록을 기준으로 한 것이므로 실제와 다를 수 있다.
  • 본관 연혁
     본관소재지 : 경상북도 봉화
    봉화(奉化)는 경상북도 봉화군(奉化郡)의 옛 지명으로 신라 때에는 고사마현(古斯馬縣)이라 불리었다. 757년(신라 경덕왕 16)에 옥마현(玉馬縣)으로 바뀌었고, 내령군(奈靈郡: 榮州)의 영현(嶺縣)이 되었다. 940년(고려 태조 23)에 봉화현(奉化縣)으로 개편되어 현재의 지명을 갖게 되었다. 1018년(현종 9)에는 안동(安東) 속현이었다가, 1390년(공양왕 2) 감무를 설치하여 독립하였는데, 이때 안동부 소속의 미량부곡(彌良部曲)·매토부곡(買土部曲)을 편입하였다.
    조선 초의 군현제 개편으로 1413년(태종 13)에 현이 되었다. 1457년(세조 3)에 단종복위운동으로 순흥부가 혁파되어 문수산 이동지역을 나누어 받았다가 1683년(숙종 9) 순흥이 복구되면서 이양하였다. 임진왜란 후 선조 대에 오지인 이 고을 태백산 각화사 근처에 선원각과 실록 등을 보관하는 사고(史庫)가 설치되어 태백산 사고로 불리었다. 1895년(고종 32) 지방제도 개정으로 안동부(安東府) 봉화군(奉化郡)이 되었고, 1896년 경상북도로 이속되었다. 1913년에 교통편의를 위해 군 청사를 춘양면(春陽面)으로부터 봉화면(奉化面)으로 옮겼다. 1914년 군면 폐합으로 군내면과 북면이 봉성면으로 통합되었고, 1956년에 내성면이 봉화면으로 개칭되었으며, 1978년 봉화면이 봉화읍(奉化邑)으로 승격되었다.
    인구수
    통계청의 인구조사에 의하면 봉화정씨는
    1985년에는 4,939가구 20,468명, 2000년에는 7,272가구 23,173명,
    가장 최근인 2015년에는 27,088명으로 조사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