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래
연안정씨(延安鄭氏)에 대한 자료가 없습니다.
과거급제자(조선시대)
정시영(鄭始榮, 1766 丙戌生) : 생원진사시(生員進士試) 순조16년(1816) 식년시 삼등(三等)
정태하(鄭泰河, 1702 壬午生) : 생원진사시(生員進士試) 영조3년(1727) 증광시 삼등(三等)
정약광(鄭約光, 1761 辛巳生) : 생원진사시(生員進士試) 정조16년(1792) 식년시 삼등(三等)
정지춘(鄭芝春, 1744 甲子生) : 생원진사시(生員進士試) 정조14년(1790) 증광시 삼등(三等)
* 모두 4명의 과거급제자가 있다.
(생원진사시 4명)
※ 과거급제자는 조선조방목 기록을 기준으로 한 것이므로 실제와 다를 수 있다.
본관 연혁
본관소재지 : 황해도 연백
연안(延安)은 황해도 연백군(延白郡) 일원의 옛 지명으로 고구려 때 동음홀(冬音忽) 또는 고염성(鼓鹽城)이라 부르다가 신라시대에 해고군(海皐郡)으로 바꾸었다. 고려에서는 염주(鹽州)·영응현(永膺縣)·복주(復州)·석주(碩州)·온주(溫州) 등으로 고쳐 불렀고, 1310년(충선왕 2)에 연안(延安)으로 고쳤다. 1413년(태종 13)에 연안도호부가 되었고, 1895년(고종 32) 지방제도 개정으로 연안군이 되었다. 1914년 군면 폐합으로 연안군은 다시 배천군(白川郡)과 합하여 연백군이 되었다.
인구수
통계청의 인구조사에 의하면 연안정씨는
1985년에는 232가구 1,101명, 2000년에는 520가구 1,714명,
가장 최근인 2015년에는 948명으로 조사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