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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온양정씨(溫陽鄭氏)
    유래
     시조 : 정보천(鄭普天)
    시조 정보천(鄭普天)은 고려 때 은청광록대부 호부상서(銀靑光祿大夫 戶部尙書)를 지냈고 그의 선조에 대한 기록은 없어서 고증 할 수 없다.
    전하는 바에 의하면 탕정군(湯井. 온양의 옛이름)은 백제지역으로 고려 태조가 유금필(臾黔弼)과 함께 이곳 탕정군에 왔을 때 고을 관리에 공이 있음을 보고 정씨에게 관을 제수(除授)하고 그 후손들은 그 군의 향직(鄕職)인 호장(戶長)이 되게 했다고 한다. 그래서 후손들이 온양을 본관으로 했다.
    인물
    조선시대에 2명의 상신과 43명의 문과 급제자를 배출하였다.
    정순붕(鄭順朋)은 연산군 10년 문과에 급제하여 공조, 병조판서 등을 거쳐 중종 때 호조판서를 역임, 지중추부사가 되었을 때 인종이 죽고 명종이 즉위하자 소윤(小尹)으로서 대윤(大尹)을 제거하는데 적극 활약했다. 그 공으로 보익공신(保翼功臣) 1등이 되고 우찬성겸지경연사(右贊成兼知經筵事)에 승진하여 온양부원군에 봉해졌으며 이해 우의정(右議政)에 올랐다.
    정순붕의 7대손인 정만석(鄭晩錫)은 평안도에 홍경래의 난이 일어나자 평안도위사(平安道慰使)로 나갔고 난후에는 평안도관찰사가 되어 민생을 잘 돌보았으며 1829년에 우의정에 올랐다.
    정현은 1545년 을사사화 때 윤임(尹任) 일파를 제거한 공으로 위사공신(衛社功臣) 3등에 올라 사섬사직장(司贍寺直長)이 되었으며 1551년 충훈부도사(忠勳府都事)가 되고 다음해 대호군을 거쳐 성천부사(成川府使)에 이르렀다.
    정창순(鄭昌順)은 1757년 정시문과(庭試文科)에 을과(乙科)로 급제하고, 지평(持平)을 거쳐 1763년 호서감운어사(湖西監運御史)로 나갔으며 이어 正言(正言), 금천도찰방(金泉道察訪)을 지냈다. 그후 부교이수찬(副校理修撰) 등을 거쳐 정조 때 대사간, 대사헌, 함경도와 경상도의 관찰사 선혜청제조(宣惠廳提調) 등을 역임하고 예조판서에 이르렀다.
    그밖에 동지중추부사(同知中樞府事) 정유(鄭裕) 등이 있다.
    주요 인물
    과거급제자(조선시대)
     정사효(鄭思孝) : 문과(文科) 숙종23년(1697) 중시 갑과(甲科) 장원급제
     정뇌경(鄭雷卿, 1608 戊申生) : 문과(文科) 인조8년(1630) 별시 갑과(甲科) 장원급제
     정두경(鄭斗卿, 1597 丁酉生) : 문과(文科) 인조7년(1629) 별시 갑과(甲科) 장원급제
     정희번(鄭姬藩) : 문과(文科) 선조3년(1570) 식년시 을과(乙科)
     정첨(鄭○, 1517 丁丑生) : 문과(文科) 명종8년(1553) 친시 을과(乙科)
     정사웅(鄭士雄, 1536 丙申生) : 문과(文科) 선조22년(1589) 증광시 을과(乙科)
     정만시(鄭萬始, 1759 己卯生) : 문과(文科) 정조6년(1782) 비천당문과 을과(乙科)
     정백붕(鄭百朋) : 문과(文科) 연산군10년(1504) 별시2 을과(乙科)
     정창순(鄭昌順, 1727 丁未生) : 문과(文科) 영조33년(1757) 정시2 을과(乙科)
     정광진(鄭光震, 1703 癸未生) : 문과(文科) 영조22년(1746) 춘당대시 병과(丙科)
    등 모두 252명의 과거급제자가 있다.
    (문과 43명, 무과 22명, 생원진사시 101명, 역과 31명, 의과 39명, 음양과 3명, 율과 13명)
  • ※ 과거급제자는 조선조방목 기록을 기준으로 한 것이므로 실제와 다를 수 있다.
  • 세거지
    -충북 중원군 하금면 장천리
    -충남 서산군 소원면 아정리
    -충남 아산군 인주면 대음리
    -충남 천원군 광덕면 대덕리
    -황해도 연백군 도촌면 오산리
    -함남 갑산군 갑산면, 회린면
    본관 연혁
     본관소재지 : 충청남도 아산
    온양(溫陽)은 충청남도 아산시(牙山市)에 위치한 지명으로 본래 백제의 탕정군(湯井郡)이었다. 671년(신라 문무왕 11)에 탕정주(湯井州)로 승격되어 총관(摠管)이 파견되었다. 757년(경덕왕 16)에는 탕정군으로 강등되었으나 음봉현(陰峰縣)·기량현(祈梁縣)·평택현(平澤縣)을 영현으로 관장하였다. 940년(고려 태조 23)에 온수군(溫水郡)으로 고치고, 1018년(현종 9)에 천안부(天安府)에 속하게 하였다. 1172년(명종 2) 현으로 강등되었다. 1414년(태종 14)에 신창(新昌)과 병합하여, 온창현(溫昌縣)이라 이름을 바꾸었다가 1416년에 다시 온수현을 분리하였다. 1441년(세종 23)에 왕이 온천에 행차한 후 병에 차도가 있어 온양군으로 승격되어 조선시대 동안 유지되었다. 이후에도 역대 왕들은 이곳 온천에 자주 행차하였다. 1895년(고종 32) 지방제도 개정으로 홍주부 온양군이 되었고, 1896년에 충청남도 온양군이 되었다. 1914년 군면 폐합으로 온양군은 아산군·신창군과 함께 아산군으로 통합함으로써 폐지되었다. 1941년 관할 군내면·서면·읍내면을 합해 만든 온양면이 온양읍으로 승격되었다. 1973년 인근지역을 편입해 면적을 확장하던 온양읍이 1986년에 시로 승격, 아산군에서 분리되었다. 1995년 온양시와 아산군을 통합하여 아산시가 되었다.
    인구수
    통계청의 인구조사에 의하면 온양정씨는
    1985년에는 5,689가구 24,134명, 2000년에는 7,599가구 24,897명,
    가장 최근인 2015년에는 29,761명으로 조사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