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래
시조 : 정자여(鄭子與)
시조 정자여(鄭子與)의 시호는 문경(文敬)으로 고려 현종(顯宗) 때 문과에 올라 나라에 공을 세우고, 추충진국공시(推忠鎭國功臣)로 은청광록대부(銀靑光錄大夫)에 올라, 문하시랑평장사(門下侍郞平章事), 판추밀원사(判樞密院事) 등을 지냈고 장기백에 봉해진 후 식읍(食邑)을 하사받았다.
장기정씨의 선대는 경주정씨이고 영일정씨로 분관되었다가 정자여가 장기를 식읍으로 하사받아 장기를 본관으로 하였다.
인물
정자여의 아들 정극겸(鄭克兼)이 직학사(直學士)를 지냈고, 손자 정희경(鄭希景)은 순검사(巡檢使)를, 증손자 정구(鄭球)는 낭중(郎中)을 지냈다.
직제학(直提學)에 오른 정천룡(鄭天龍)과 봉산군(蓬山君)에 봉해진 정천봉(鄭天鳳)은 사간(司諫)을 지낸 정수(鄭需)의 아들로, 6세손 정승주(鄭承周)와 함께 가문을 빛냈다.
학자로 이름을 날린 정규한(鄭奎漢)은, 조선 정조 때 사마시(司馬試)에 합격하고도 벼슬길에 나가지 않고 학문에만 전념하여 성리학(性理學)에 조예가 깊었으며 "화산집(華山集)"을 저술하였다.
그 밖에 지중추부사(知中樞府事)를 역임한 정동엽(鄭東燁), 별제(別提)를 지낸 정습 등이 가문을 빛냈다.
과거급제자(조선시대)
정승주(鄭承周) : 문과(文科) 중종12년(1517) 별시 을과(乙科)
정동엽(鄭東燁, 1603 癸卯生) : 문과(文科) 효종5년(1654) 식년시 병과(丙科)
정세걸(鄭世傑, 1647 丁亥生) : 무과(武科) 현종7년(1666) 별시 을과(乙科)
정이강(鄭二綱, 1666 丙午生) : 무과(武科) 숙종21년(1695) 별시 병과(丙科)
정세주(鄭世周, 1636 丙子生) : 무과(武科) 현종13년(1672) 별시 병과(丙科)
정걸(鄭傑, 1544 甲辰生) : 무과(武科) 선조16년(1583) 별시 병과(丙科)
정덕형(鄭德珩, 1638 戊寅生) : 무과(武科) 현종7년(1666) 별시 병과(丙科)
정득인(鄭得仁, 1601 辛丑生) : 무과(武科) 인조15년(1637) 별시 병과(丙科)
정규한(鄭奎漢, 1751 辛未生) : 생원진사시(生員進士試) 정조4년(1780) 식년시 삼등(三等)
정동선(鄭東善, 1595 乙未生) : 생원진사시(生員進士試) 인조13년(1635) 증광시 삼등(三等)
등 모두 17명의 과거급제자가 있다.
(문과 2명, 무과 6명, 생원진사시 9명)
※ 과거급제자는 조선조방목 기록을 기준으로 한 것이므로 실제와 다를 수 있다.
본관 연혁
본관소재지 : 경상북도 포항
장기(長鬐)는 경상북도 옛 연일군에 있었던 고려시대의 지명이다. 신라 때는 지답현(只沓縣)이라 하다가 757년(신라 경덕왕 16)에 기립현으로 고쳤다. 940년(고려 태조 23)에 장기현으로 고치고, 1018년(현종 9) 경주부(慶州府)의 속현으로 하였다. 1895년(고종 32) 지방제도 개정으로 동래부 장기군으로 승격하였고, 1896년에 경상북도로 이관되었다. 1914년 군면 폐합으로 군이 폐지되고 내서(內西)·양남(陽南)은 경주(慶州)에 편입하였고, 나머지는 연일군(延日郡)에 합하였다. 1995년 연일군은 포항시에 통합되었다.
인구수
통계청의 인구조사에 의하면 장기정씨는
1985년에는 680가구 2,795명, 2000년에는 1,011가구 3,206명,
가장 최근인 2015년에는 4,705명으로 조사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