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래
시조 : 정원흥(鄭元興)
시조 정원흥(鄭元興)은 원래 연일정씨로 고려 때 예의판서(禮儀判書)를 지낸 정작의 세째 아들로 고려 예종(禮宗) 때 장례원(掌隷院)의 판결사(判決事)를 지내고 뒤에 전주(全州)에 유배(流配) 되었다가 그 곳에서 정착하여 살게 되었다고 한다.
연일(延日)에서 분관하여 본관을 전주하고 있다.
인물
정광엽(鄭光葉)이 도승지(道承旨)를 역임했고, 그의 맏아들 정제홍(鄭齊弘)은 정랑(正郞)을, 둘째 정제운(鄭齊云)은 찰방(察訪)을 지냈다.
주요 인물
과거급제자(조선시대)
정대진(鄭大振, 1603 癸卯生) : 무과(武科) 인조15년(1637) 별시 병과(丙科)
정언수(鄭彦守, 1598 戊戌生) : 무과(武科) 인조15년(1637) 별시 병과(丙科)
정환교(鄭桓僑, 1825 乙酉生) : 생원진사시(生員進士試) 고종17년(1880) 증광시 삼등(三等)
* 모두 3명의 과거급제자가 있다.
(무과 2명, 생원진사시 1명)
※ 과거급제자는 조선조방목 기록을 기준으로 한 것이므로 실제와 다를 수 있다.
본관 연혁
본관소재지 : 전라북도 전주
전주(全州)는 전라북도 중앙에 위치한 지명으로 고대 마한(馬韓)의 원산성(圓山成)에서 유래하며, 백제시대에 완산(完山) 또는 비사벌(比斯伐)·비자화(比自火) 등으로 불렸다가, 555년(위덕왕 2)에 완산주(完山州)로 하였다. 757년(신라 경덕왕 16)에 완(完)을 의역(意譯)하여 전주(全州)로 고쳤고, 900년(효공왕 4)에 견훤(甄萱)이 무주(武州: 光州)로부터 이곳으로 후백제의 도읍을 옮겨 백제 부흥의 노력을 하였다. 936년(고려 태조 19)에 후백제가 망하자 안남도호부(安南都護府)가 설치되었다가 940년에 다시 전주로 회복되었다. 983년(성종 2)에 12목 가운데의 하나인 전주목이 설치되었으며, 993년에 승화(承化)로 개칭하고 절도안무사(節度安撫使)를 두었다. 995년에는 강남도(江南道) 관하의 전주순의군절도사(全州順義軍節度使)가 되었다가 1018년(현종 9)에 다시 안남대도호부로 승격되고, 1022년에 전주목으로 개칭되어 1곳의 속군과 11곳의 속현을 포함하는 큰 고을이 되었다. 1310년(충선왕 2)에 전주로 강등되고, 1355년(공민왕 4)에는 부곡으로 강등되었다가 이듬해에 완산부(完山府)로 복구되었다. 1392년(태조 1)에 전주이씨의 본향지라 하여 완산부유수(完山府留守)로 승격되었으며, 1403년(태종 3)에 전주부(全州府)로 개칭되어 조선시대 동안 유지되었다. 1895년(고종 32) 지방제도 개정으로 전주부 전주군이 되었고, 1896년 전라북도 전주군으로 개편된 이래 1935년 전주면이 부로 승격하여 독립하고 1949년 전주시로 개칭되었다.
인구수
통계청의 인구조사에 의하면 전주정씨는
1985년에는 1,538가구 6,957명, 2000년에는 2,461가구 8,248명,
가장 최근인 2015년에는 1,268명으로 조사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