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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진양정씨(晋陽鄭氏, 진주)
    유래
    진양정씨는 동성동본이면서도 각각 시조를 달리하는 8개파가 있어 흔히 진양(현재의 진주) 8정이라고들 일컫는다.
    원조는 삼국유사에 전하는 박혁거세를 왕으로 추대한 신라 6촌장 중 한 사람으로 진지부(珍支部)의 촌장 지백호(智伯虎)이며, 그의 후대에서 정씨의 분관, 분파가 이루어졌다. 본관지 진양은 고려시대에 선조들이 살아오던 곳이다.

    - 충장공파(忠莊公派, 예계) : 고려의 건국공신(建國功臣)으로 문하시중(門下侍中) 평장사(平章事)를 지낸 정예(鄭藝)를 시조로 한다. 그 후의 세계가 실전되어 정예의 후손으로 고려 문종 때 보문각대제학(寶文閣大提學)을 지낸 문익공(文翼公) 정시양(鄭時陽)을 1세조로 하여 대를 이어오고 있다.

    - 은열공파(殷烈公派, 자우계) : 고려 때 호장(戶長)을 지낸 정자우(鄭子友)를 시조로 한다. 그 후 고려 현종 때 진양부원군(晉陽府院君)에 봉해진 6세손 정신열(鄭臣烈)을 중시조로 하는 파와 7세손 정중공(鄭仲恭)을 중조로 하는파와 8세손 좌우위보승중랑장(左右衛保勝中郞將) 정보경(鄭普卿)을 중조로 하는 파로 나뉘어진다고 한다.

    - 공대공파(恭戴公派, 장계) : 고려말 통정첨지중추원사(通政僉知中樞院事) 를 지낸 정장(鄭莊)을 시조로 한다.

    - 어사공파(御史公派, 헌계) : 고려 때 감찰어사(監察御使)를 지낸 정택(鄭澤)을 시조로 한다. 정택은 고려 말에 문하시랑 평장사로 진산부원군에 봉해진 정헌(鄭櫶)의 손자이다.

    - 첨정공파(僉政公派) : 고려 때 첨정(僉正)을 지낸 정중공(鄭仲恭)을 시조로 한다.

    - 우곡공파(愚谷公派) : 고려 때 대사헌(大司憲)을 지낸 정온(鄭溫)을 시조로 한다. 정헌(鄭櫶) 계통

    - 지후공파(祗侯公派) : 고려 때 지후(祗侯)를 지낸 정신(鄭侁)을 시조로 한다.

    - 내부사공파(內府事公派) : 고려 때 판내부사(判內府事)를 지낸 정안교(鄭安校)를 시조로 한다.

    충장공파, 은열공파, 공대공파, 어사공파 등은 진양정씨의 4대 봉우리로, 현재의 진양정씨는 이들 후손들이 주류을 형성하고 있다. 일부에서는 진주 8정이 모두 정예(鄭藝)의 후손이라 주장하지만, 아직까지 정예의 후손이 8파로 나누어졌다는 문헌 등 자료가 없어 아직 합보가 실현이 못되고, 같은 선조라는 인식도 없는 상태이다.
    인물
    고려 때 양관대제학을 지낸 정시양(鄭時陽), 병부상서를 역임한 정신열(鄭臣烈), 판도판서인 정임덕(鄭任德), 예의판서의 정유(鄭愈), 대제학을 지낸 정수(鄭需), 평장사를 지낸 정록, 찬성사를 지낸 정을보(鄭乙輔) 등이 있다.
    공민왕 때 전객령(典客令)을 지내고, 중국에서 목화씨를 들여온 문익점(文益漸)의 장인으로 목화종자를 재배하고 보급하는데 큰 공적을 남긴 정천익(鄭天益)도 빼놓을 수 없는 인물이다.

    조선시대에 상신 1명(그의 아들이 정지산(鄭之産)이다), 대제학 2명, 문과 급제자 59명과 정척(鄭陟), 정성근(鄭誠謹) 등의 청백리를 배출해냈다.
    조선 인조 때 대제학을 지낸 정경세(鄭經世), 서애 유성룡(柳成龍)의 수제자였던 그는 나이 스물셋에 문과에 급제하고 호당(湖堂)에 뽑혔던 수재. 1592년 임진왜란이 일어나자 의병을 모집하여 공을 세웠고 성리학 뿐만아니라 예학에도 밝아 김장생(金長生)과 함께 예학파를 형성했다.
    임진왜란의 명장 정기용(鄭起龍)장군은 임진왜란 당시 상주성 탈환, 정유재란때의 성주, 초계, 의령성 탈환 전투에도 눈부신 전공을 세웠다. 광해군 9년 삼도통제사 겸 경상우도수군절도사에 올라 남해안을 방어하던 중 통영진중에서 숨졌다.
    주요 인물
    과거급제자(조선시대)
     정재춘(鄭再春, 1680 庚申生) : 문과(文科) 경종3년(1723) 식년시 갑과(甲科) 장원급제
     정흔(鄭昕, 1566 丙寅生) : 문과(文科) 광해군8년(1616) 별시 갑과(甲科) 장원급제
     정백창(鄭百昌) : 문과(文科) 인조4년(1626) 중시 을과(乙科)
     정사제(鄭思悌, 1556 丙辰生) : 문과(文科) 선조24년(1591) 식년시 병과(丙科)
     정필달(鄭必達, 1611 辛亥生) : 문과(文科) 인조23년(1645) 별시 을과(乙科)
     정종학(鄭鍾學) : 문과(文科) 고종13년(1876) 중시 병과(丙科)
     정사현(鄭思顯, 1509 己巳生) : 문과(文科) 명종4년(1549) 식년시 병과(丙科)
     정사량(鄭思亮) : 문과(文科) 명종1년(1546) 증광시 병과(丙科)
     정윤(鄭潤, 1852 壬子生) : 문과(文科) 고종30년(1893) 별시2 병과(丙科)
     정휘진(鄭彙晉, 1713 癸巳生) : 문과(文科) 영조17년(1741) 식년시 병과(丙科)
    등 모두 252명의 과거급제자가 있다.
    (문과 59명, 무과 44명, 생원진사시 147명, 음양과 1명, 주학 1명)
  • ※ 과거급제자는 조선조방목 기록을 기준으로 한 것이므로 실제와 다를 수 있다.
  • 세거지
    전라남도 나주군 봉황면 철천리. 속칭 철야마을.
    4백여년의 연륜을 자랑하는 덕룡산 기슭 울창한 느티나무 숲속에 철야마을은 묻혀있다. 마을 입구에 지붕을 드리운 만호정(挽湖亨)은 이 마을 유림들이 산수를 노래하며 노닐었던 유서깊은 사교장이다.
    마을 뒤 덕룡산은 피비린내나는 의병전적지였다. 나주군 일대의 의병들은 산세가 험한 덕룡산에 숨어 일본군과 대치하며 전투를 계속했고 밤이면 마을 아낙네들이 치마 폭에 찐감자 등 먹을 것을 감춰 산으로 날랐다고 한다.
    항렬자

     정예(鄭藝) 계
    28世
    영(永)○
    29世
    중(重)○
    30世
    찬(燦)○
    31世
    ○식(植)
    32世
    ○규(奎)
    33世
    ○감(鑑)
    34世
    헌(憲)○
    35世
    종(鍾)○
    36世
    일(一)○
    37世
    ○희(喜)
    38世
    ○원(源)
    39世
    ○인(仁)
    40世
    종(鐘)○
    41世
    삼(三)○
    42世
    휴(休)○
    43世
    ○순(淳)
    44世
    ○헌(憲)
    45世
    ○수(壽)
    46世
    근(根)○
    47世
    오(五)○
    48世
    길(吉)○
    49世
    ○묵(默)
    50世
    ○진(鎭)
    51世
    치(致)○
    52世
    호(浩)○
    53世
    ○선(善)
    54世
    ○주(柱)
    55世
    해(海)○
    56世
    병(炳)○
    57世
    ○래(來)
    58世
    ○기(基)
    59世
    대(大)○
    60世
    석(錫)○
    61世
    ○泰(태)
    62世
    相(상)○
    63世
    -
    64世
    -
    65世
    -
    66世
    -
    67世
    -

     정자우(鄭子友) 계통 신
    25世
    원(源)
    26世
    식(植)
    27世
    연(然)
    28世
    주(周)
    29世
    종(鍾)
    30世
    영(永)
    31世
    병(秉)
    32世
    덕(悳)
    33世
    균(均)
    34世
    흠(欽)
    35世
    호(浩)
    36世
    근(根)
    37世
    희(熙)
    38世
    배(培)
    39世
    진(鎭)
    40世
    순(淳)
    41世
    병(柄)
    42世
    휴(烋)
    43世
    시(時)
    44世
    용(鎔)

     정장(鄭莊) 계통
    22世
    화(和)
    23世
    용(容)
    24世
    기(基)
    25世
    현(鉉)
    26世
    수(洙)
    27世
    동(東)
    28世
    환(煥)
    29世
    교(敎)
    30世
    석(錫)
    31世
    락(洛)
    32世
    주(柱)
    33世
    휴(烋)
    34世
    규(圭)
    35世
    용(鏞)
    36世
    -
    37世
    -
    38世
    -
    39世
    -
    40世
    -
    41世
    -

     정헌(鄭櫶) 계통
    20世
    환(煥)
    21世
    묵(黙)
    22世
    규(圭)
    23世
    재(在)
    24世
    호(鎬)
    25世
    용(鎔)
    26世
    영(泳)
    27世
    주(注)
    28世
    병(炳)
    29世
    영(榮)
    30世
    희(熙)
    31世
    휴(烋)
    32世
    기(基)
    33世
    곤(坤)
    34世
    석(錫)
    35世
    전(銓)
    36世
    구(求)
    37世
    여(汝)
    38世
    근(根)
    39世
    계(桂)
    40世
    훤(煊)
    41世
    현(炫)
    42世
    요(堯)
    43世
    균(均)
    44世
    진(鎭)
    45世
    종(鍾)
    46世
    -
    47世
    -
    48世
    -
    49世
    -

     정중공(鄭仲恭) 계통
    25世
    주(株)
    26世
    병(炳)
    27世
    기(基)
    28世
    호(鎬)
    29世
    영(泳)
    30世
    식(植)
    31世
    섭(燮)
    32世
    재(在)
    33世
    석(錫)
    34世
    태(泰)

     정택(鄭澤) 계통
    28世
    민(民)
    29世
    우(遇)
    30世
    동(東)
    31世
    묵(黙)
    32世
    재(在)
    33世
    진(鎭)
    34世
    -
    35世
    -
    36世
    -
    37世
    -

     정수(鄭需) 계통
    23世
    한(漢)
    24世
    해(海)
    25世
    제(濟)
    26世
    식(植)
    27世
    모(模)
    28世
    채(采)
    29世
    연(然)
    30世
    병(炳)
    31世
    형(炯)
    32世
    기(基)
    33世
    효(孝)
    34世
    달(達)
    35世
    종(鍾)
    36世
    용(鎔)
    37世
    진(鎭)
    38世
    태(泰)
    39世
    호(浩)
    40世
    수(洙)
    41世
    상(相)
    42世
    병(秉)
    43世
    래(來)
    44世
    현(炫)
    45世
    희(熹)
    46世
    혁(爀)
    47世
    재(在)
    48世
    규(圭)
    49世
    채(埰)
    50世
    석(錫)
    51世
    호(鎬)
    52世
    일(鎰)
    53世
    영(永)
    54世
    순(淳)
    55世
    택(澤)
    56世
    빈(彬)
    57世
    표(杓)
    58世
    근(根)
    59世
    경(炅)
    60世
    영(煐)
    61世
    찬(燦)
    62世
    -
  • ※ 世와 代는 다른 것으로 世에서 1을 뺀 값이 代가 된다. (예: 24世孫은 23代孫)
  • 본관 연혁
     본관소재지 : 경상남도 진주
    진양(晉陽)은 경상남도 남서쪽에 위치한 지명으로 본래 삼한시대에 소국인 고순시국(古淳是國)이 있었던 곳이다. 백제의 거열성(居烈城)이었고, 신라 문무왕 때 신라의 영토가 되어 거열주(居烈州)라 불리었으며, 757년(신라 경덕왕 16) 9주 5소경제(九州五小京制)의 실시와 함께 강주도독부(康州都督府)로 고쳤다가, 혜공왕 때 청주(菁州)로 개칭되었다. 고려 초에 강주(康州)로 환원되었다. 983년(성종 2) 전국에 12목을 둘 때 진주목이 되었다. 995년(성종 14)에는 정해군(定海軍)이라 하고 절도사(節度使)를 두어 산남도(山南道)에 속하게 하였다. 1012년에 안무사(按撫使)로 고쳤다가, 1018년(현종 9)에 진주목으로 복구되었다. 1310년(충선왕 2)에 진주로 강등되었다가 1356년(공민왕 5)에 다시 진주목으로 회복되었다. 1392년(태조 1)에 진양대도호부(晉陽大都護府)가 되었다가 1402년(태종 2)에 진주목으로 환원되어 조선시대 동안 유지되었다. 1895년(고종 32) 지방제도 개정으로 진주부 진주군이 되었다가, 1896년에 13도제(道制) 실시로 경상남도 진주군이 되었다. 1931년에 진주면이 읍으로 승격하였다. 1939년 진주읍이 시로 승격하면서 나머지 지역이 진양군으로 개칭되었으며, 1995년 진양군이 진주시에 통합되었다.
    인구수
    통계청의 인구조사에 의하면 진양정씨는
    1985년에는 55,464가구 231,289명, 2000년에는 74,777가구 238,505명,
    가장 최근인 2015년에는 127,279명으로 조사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