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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풍기정씨(豊基鄭氏)
    유래
     시조 : 정의(鄭誼)
    시조 정의(鄭誼)는 고려시대에 영정 감무(永定監務)를 역임하였으므로 관적(貫籍)을 영정(永定)으로 하였다가, 그의 아들 정기(鄭琪)가 문하시랑(門下侍郞)으로 공(功)을 세워 삼한벽상공신(三韓壁上功臣)에 녹훈(錄勳)되고 풍기군(豊基君)에 봉(封)해졌다.
    그래서 후손들이 본관을 풍기로 하였다.
    그 후 임진왜란(壬辰倭亂) 때 15세손 정형(鄭衡)이 경기도 광주에서 살다가 영남(嶺南)으로 피난 중에 보첩(譜牒)에 관한 문헌(文獻)을 분실(紛失)하여 시조의 선계는 물론 분관(分貫)된 연원(淵源)을 소상히 밝히지 못하고 있다.
    인물
    정기의 아들 정균(鄭筠)이 고려시대에 은청광록대부(銀靑光祿大夫)에 올랐고,
    고려말에 정정(鄭靖)은 검교상서(檢校尙書)를 역임하였다.

    조선시대에 와서는 도사(都事) 정수산(鄭壽山)의 아들 정덕승(鄭德承)과 정덕상(鄭德尙)이 현감(縣監)을 역임하였다.
    또한, 정성진(鄭聖進)이 좌찬성(左贊成)에 올르고, 1728년(영조 4) 이인좌(李麟佐)의 난을 평정하는데 공을 세워 분무원종공신 (奮武原從功臣)에 책록된 정태재가 유명했고, 부호군(副護軍)을 지낸 정일람(鄭一覽), 정익화(鄭益華)와 학자(學者) 정시영(鄭始榮), 한성부 판관(漢城府判官)을 역임한 정연성(鄭淵性) 등도 대를 이어 풍기정씨의 가문을 빛냈다.
    과거급제자(조선시대)
     정승립(鄭承立, 1603 癸卯生) : 무과(武科) 인조15년(1637) 별시 병과(丙科)
     정계종(鄭繼宗, 1591 辛卯生) : 무과(武科) 인조15년(1637) 별시 병과(丙科)
     정승호(鄭承豪, 1598 戊戌生) : 무과(武科) 인조15년(1637) 별시 병과(丙科)
     정만선(鄭晩善, 1828 戊子生) : 생원진사시(生員進士試) 고종10년(1873) 식년시 삼등(三等)
     정기주(鄭起周, 1639 己卯生) : 생원진사시(生員進士試) 숙종1년(1675) 식년시 이등(二等)
     정백흥(鄭百興, 1629 己巳生) : 주학(籌學) 효종4년(1653)
    * 모두 6명의 과거급제자가 있다.
    (무과 3명, 생원진사시 2명, 주학 1명)
  • ※ 과거급제자는 조선조방목 기록을 기준으로 한 것이므로 실제와 다를 수 있다.
  • 본관 연혁
     본관소재지 : 경상북도 영주
    풍기(豊基)는 경상북도 북부에 위치한 지명으로 영주시에 속해있다. 신라 때에는 기목진(基木鎭)이었다. 940년(고려 태조 23) 기주(基州)로 개칭되었고, 1018년(현종 9) 안동의 속현으로 병합되었다. 1172년(명종 2) 감무를 두면서 독립하였으며, 1390년(공양왕 1) 은풍현(殷豊縣)을 병합하였다. 1413년(태종 13)에 기천현(基川縣)으로 개칭하여 오다가 1450년(세종 32) 은풍(殷豊)과 기천(基川)을 합하여 풍기군(豊基郡)으로 승격되었다. 1451년(문종 1) 문종의 태(胎)를 은풍현(殷豊縣)에 봉안하였다. 1895년(고종 32) 지방제도 개정으로 안동부 풍기군이 되었다가, 1896년 경상북도 풍기군이 되었다. 1914년 군면 폐합으로 풍기군이 영주군에 통합되었다. 1980년 영주시를 분리하면서 영풍군으로 개편되었고, 1995년 영풍군이 영주시에 통합되었다.
    인구수
    통계청의 인구조사에 의하면 풍기정씨는
    1985년에는 169가구 693명, 2000년에는 373가구 1,149명,
    가장 최근인 2015년에는 959명으로 조사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