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뿌리를 찾아서 ... |
![]() |
|
www.rootsinfo.co.kr |
성씨의 종류와 유래
성씨의 역사
족보 이야기
친인척 호칭법
국가 연대표
역대왕 연대표
성씨별 인구순위
본관별 인구순위
고사성어
![]() ![]() ![]() |
![]() 하동정씨(河東鄭氏)
유래
하동정씨는 본관을 같이하면서 시조를 달리하는 3계통이 있다.
[밀직공 국룡파(密直公 國龍派)] 평장사에 오른 정도정(鄭道正)을 시조로 하고 그후 후손의 기록이 없어 고려 때 문하시중을 지낸 후손 정석숭(鄭碩崇)을 1세조로 10세 정인지(鄭麟趾), 12세 정여창(鄭汝昌)등으로 이어져 왔다. [정승공 응파(政丞公 膺派)] 고려 덕종 때 문과에 급제하고 김자광록대부(金紫光祿大夫), 도첨의 좌정승(都僉議左政丞)등을 지낸 정응(鄭膺)을 시조로 하고 6세 정희(鄭熙), 7세 정초(鄭招)로 이어져왔다. 정응의 부인는 군부인(郡夫人) 하동배씨이다. [지부사공 손위파(知部事公 遜位派)] 고려 숙종때부터 명종등 5왕조에 걸쳐 벼슬을하여 정헌대부(正憲大夫), 지례부사(知禮部事), 응양대장군(膺揚大將軍), 문하시중(門下侍中)을 지내고 하동백에 봉해진 정손위(鄭遜位)를 시조로 하고 있다. 인물
조선시대에 들어와 상신(相臣) 1명, 대제학(大提學) 1명을 배출했다.
정초(鄭招)는 1405년 문과에 급제, 1407년 문과중시(文科重試)에 급제, 좌정언(左正言)이되었다. 그후 판승문원사(判承文院事)를 거쳐 함길도도관찰사, 예조, 형조, 이조의 참판등을 역임하고 이어 예문관대제학이 되어 정인지와 함께 역법(歷法)을 개정했다. 정인지(鄭麟趾)는 1414년 문과에 장원 1425년 직제학에 올랐으며 1427년에는 문과중시에 장원급제한 수재였다. 1453년 계유정난에 수양대군을 도와 우의정에 승진하고 정난공신 1등으로 하동부원군(河東府院君)에 봉해졌으며 1455년 세조 즉위 후 영의정에 올랐다. 정택뢰(鄭澤雷)는 1617년 이이첨(李爾瞻)이 폐모론을 제기하자 그부당함을 논하다 화를 입게된 이지익(李之翼)을 극력 변호, 이이첨 일당을 죽일것을 상소하여 어머니 강(姜)씨와 함께 남해에 유배되어 죽음을 당하고 1623년 인조반정 후 지평(持平)에 추증되었다. 정봉수(鄭鳳壽)는 1592년 무과에 급제하고 이해 임진왜란이 일어나자 선전관(宣傳官)으로 왕을 모신 뒤 1605년 무안현대장(務安縣代將)으로 흑산도 앞바다에 침입한 왜군을 섬멸하였으며 1627년 정유호란 때에는 철산의 의병장으로서 큰 공을 세워 그 공으로 철산부사에 특진되고 동지중추부사(同知中樞府事)가 되었다. 주요 인물
과거급제자(조선시대)
정최성(鄭○成, 1745 乙丑生) : 문과(文科) 정조8년(1784) 정시 갑과(甲科) 장원급제
정희안(鄭希顔) : 문과(文科) 중종23년(1528) 식년시 갑과(甲科) 장원급제 정인지(鄭麟趾, 1396 丙子生) : 문과(文科) 태종14년(1414) 식년시 을과(乙科) 장원급제 정인지(鄭麟趾) : 문과(文科) 세종9년(1427) 중시 을과(乙科) 장원급제 정동혁(鄭東赫, 1691 辛未生) : 문과(文科) 영조5년(1729) 식년시 갑과(甲科) 장원급제 정희적(鄭熙績, 1541 辛丑生) : 문과(文科) 선조1년(1567) 증광시 갑과(甲科) 장원급제 정항령(鄭恒齡, 1700 庚辰生) : 문과(文科) 영조19년(1743) 정시 을과(乙科) 정홍서(鄭弘緖, 1571 辛未生) : 문과(文科) 인조6년(1628) 별시 병과(丙科) 정세보(鄭世輔, 1613 癸丑生) : 문과(文科) 인조20년(1642) 식년시 을과(乙科) 정몽필(鄭夢弼, 1725 乙巳生) : 문과(文科) 영조38년(1762) 식년시 병과(丙科) 등 모두 312명의 과거급제자가 있다. (문과 63명, 무과 38명, 생원진사시 130명, 역과 43명, 의과 21명, 음양과 8명, 율과 9명) 세거지
-평북 철산군
항렬자
본관 연혁
본관소재지 : 경상남도 하동
하동(河東)은 경상남도 최서부에 위치하는 지명으로 신라 때에는 한다사군(韓多沙郡)이었으며 757년(신라 경덕왕 16) 하동군(河東郡)으로 개칭하였고, 악양현(岳陽縣)·합포현(陜浦縣: 花開) 등 4개현을 영현으로 관할하였다. 고려시대의 행정구역 개편에 의해 1018년(현종 9) 진주(晉州)의 속현으로 병합되었다가 1172년(명종 2) 감무를 두면서 독립하였다. 1414년(태종 14)에 남해현과 합해 하남현(河南縣)이라고 하였다가 1415년(태종 15)에 다시 분리하여 하동현이 되었다. 1461년(세조 7) 섬진강변으로 읍의 중심지를 옮겼고 1704년(숙종 27)에는 하동도호부로 승격하였다. 1895년(고종 32) 지방제도 개정으로 진주부 하동군이 되었다가, 1896년에는 경상남도 하동군이 되었다. 1914년 군면 폐합으로 관할 19개면이 12개면으로 분면되었고, 1939년에 하동면이 읍으로 승격되었다. 인구수
통계청의 인구조사에 의하면 하동정씨는
1985년에는 33,864가구 142,418명, 2000년에는 49,440가구 158,396명, 가장 최근인 2015년에는 187,152명으로 조사되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