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래
시조 : 정공유(鄭公裕)
시조 정공유(鄭公裕)는 조선시대에 생원을 지냈다고 한다.
그의 아들 형제가 조선 선조 때 문과에 급제하고 현달하게되자 후손들이 본관을 해남으로 하였다.
과거급제자(조선시대)
정언식(鄭彦湜, 1538 戊戌生) : 문과(文科) 선조1년(1567) 식년시 병과(丙科)
정언홍(鄭彦洪, 1536 丙申生) : 문과(文科) 선조1년(1567) 식년시 병과(丙科)
정언식(鄭彦湜, 1538 戊戌生) : 생원진사시(生員進士試) 명종16년(1561) 식년시 삼등(三等)
정언식(鄭彦湜, 1538 戊戌生) : 생원진사시(生員進士試) 명종16년(1561) 식년시 삼등(三等)
정언홍(鄭彦洪, 1536 丙申生) : 생원진사시(生員進士試) 명종16년(1561) 식년시 삼등(三等)
* 모두 5명의 과거급제자가 있다.
(문과 2명, 생원진사시 3명)
※ 과거급제자는 조선조방목 기록을 기준으로 한 것이므로 실제와 다를 수 있다.
본관 연혁
본관소재지 : 전라남도 해남
해남(海南)은 전라남도 남서부에 위치한 지명으로 마한 때에는 구해국(狗奚國)이었다고 한다. 538년(백제 성왕 16)에 새금현(塞琴縣)이라 불리었고, 757년(신라 경덕왕 16) 침명현(浸溟縣)으로 고쳐 양무군(陽武郡: 康津)의 관할이 되었다. 940년(고려 태조 23)에는 해남현으로 이름을 바꾸어 영암군(靈巖郡)에 속하였다. 1018년(현종 9) 영암군(靈巖郡)의 속현으로 병합되었다가 뒤에 감무를 설치되면서 독립하였다. 1409년(태종 9)에 왜구의 극성으로 육지에 옮겨온 진도현(珍島縣)을 병합하여 해진군(海珍郡)이라 하였다. 1437년(세종 19)에는 다시 진도와 분리하여 현감을 두어 해남현이 되었고, 또 수군전라우수영을 두어 남쪽 해상 방비의 요지로 삼았다. 1448년(세종 30) 황원현(黃原縣)·옥산현(玉山縣)·죽산현(竹山縣)과 병합, 당악(棠岳)으로 개편하였다가 다시 해남현으로 개칭하였다. 1895년(고종 32) 지방제도 개정으로 나주부 해남군이 되었다가, 1896년 전라남도 해남군으로 개편하면서 부근 도서를 완도군으로 이속시켰다. 1955년에 해남면이 읍으로 승격되었다.
인구수
통계청의 인구조사에 의하면 해남정씨는
1985년에는 98가구 433명, 2000년에는 368가구 1,223명,
가장 최근인 2015년에는 26명으로 조사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