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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해주정씨(海州鄭氏)
    유래
     시조 : 정숙(鄭肅)
    시조 정숙(鄭肅)의 선조는 문헌이 전하지 않아 알 수 없고 다만 그의 조상이 해주 수양산 밑에서 살았던 선비집안으로 고려 때 정씨를 하사받았다고 전해온다.
    그는 고려 신종(神宗, 1197-1204 재위) 때 전법정랑(典法正郞)을 지내고 혈통을 이어왔으나 전쟁로 문헌이 소실되어 2, 3대의 계대를 밝히지 못하고 고려 말기에 정숙의 후손 정언, 정초(鄭礎)형제를 각각 1세조로 하여 2파로 분류하고 본관을 해주로 했다.
    인물
    조선시대 60명의 문과급제자와 많은 관직자를 배출하여 가문의 융성을 누린 해주정씨는 대표적 인물로 찬성(贊成)을 지낸 정이를 비롯, 이조참판 정석견(鄭錫堅), 판돈녕부사(判敦寧府事) 정효준(鄭孝俊) 등을 꼽을 수 있다.

    정이(鄭易)는 1383년 문과에 급제하고 좌정언(左正言), 사헌지평(司憲持平), 참지의정부사(參知議政府事) 등을 역임하고 1411년 한성부윤으로 정조부사(正朝副使)가 되어 명나라에 다녀와서 대사헌이 되었다. 그후 충청도관찰사, 예조와 형조 및 호조의 판서, 대제학 등을 거쳐 1419년 판한성부사(判漢城府事), 의정부찬성(議政府贊成)에 이르렀다.
    정효준(鄭孝俊)은 1623년 인조반정 후 돈녕부도정(敦寧府都正)에 올랐으며 1656년 해풍군(海豊君)에 봉해졌다. 그후 다섯 아들이 모두 과거에 급제하여 관직에 올랐다.
    연산군 시절 난세에 종적을 감추어 버린 일화의 주인공 정희양(鄭希良)은 김종직(金宗直)의 문인으로서 연산군 초에 문과에 급제하여 검열(檢閱)을 거쳐 호당(湖堂)에 들었다. 그는 일찌기 왕에게 간언(諫言)하여 무오사화가 일어나자 김해로 유배되어 3년만에 풀려나왔다. 마침 모친상을 입어 고향에서 시묘(侍墓)살이를 하던 중 종적을 감추어 버렸다. 그 후 갑자사화 때 선비들이 화를 당하게 되자 사람들은 그의 선견지명에 탄복했다고 한다. 그는 시문에 능했고 음양학(陰陽學)에도 정통하였다.
    정희양 외에도 1756년 정시문과(庭試文科)에 을과(乙科)로 급제, 여주목사로 선정을 베풀었고 그후 대사간, 도승지, 대사헌 등을 거쳐 공조판서에 이른 정운유(鄭運維) 등이 있다.
    주요 인물
    과거급제자(조선시대)
     정탁인(鄭度仁, 1840 庚子生) : 문과(文科) 고종4년(1867) 별시 갑과(甲科) 장원급제
     정일녕(鄭一寧, 1656 丙申生) : 문과(文科) 숙종32년(1706) 별시 을과(乙科)
     정문진(鄭文振, 1566 丙寅生) : 문과(文科) 선조39년(1606) 식년시 병과(丙科)
     정신(鄭愼, 1538 戊戌生) : 문과(文科) 명종19년(1564) 식년시 을과(乙科)
     정도형(鄭道亨, 1584 甲申生) : 문과(文科) 인조6년(1628) 알성시 을과(乙科)
     정순민(鄭淳民, 1755 乙亥生) : 문과(文科) 정조19년(1795) 별시 병과(丙科)
     정승(鄭勝, 1579 己卯生) : 문과(文科) 광해군8년(1616) 별시 병과(丙科)
     정익(鄭○, 1617 丁巳生) : 문과(文科) 인조20년(1642) 식년시 병과(丙科)
     정광운(鄭廣運, 1707 丁亥生) : 문과(文科) 영조6년(1730) 정시 병과(丙科)
     정문회(鄭文晦, 1563 癸亥生) : 문과(文科) 광해군8년(1616) 별시 병과(丙科)
    등 모두 237명의 과거급제자가 있다.
    (문과 60명, 무과 22명, 생원진사시 154명, 역과 1명)
  • ※ 과거급제자는 조선조방목 기록을 기준으로 한 것이므로 실제와 다를 수 있다.
  • 세거지
    - 경기도 연천군 미산면 마전리, 아미리
    - 경기도 여주군 가남면 태평리
    - 경기도 안성군 일죽면 신흥리
    - 충남 천안시 성환읍 신방리
    - 경남 진양군
    - 황해도 해주군 대차면
    - 황해도 은률군 남부면
    - 평북 정주군 남서면 보산동
    - 평남 용강군 대대면 영곡리
    항렬자
    18世
    광(光)○
    19世
    ○교(敎)
    20世
    ○석(錫)
    21世
    태(泰)○
    22世
    ○근(根)
    23世
    ○섭(燮)
    24世
    기(基)○
    25世
    ○현(鉉)
    26世
    ○원(源)
    27世
    병(秉)○
    28世
    ○묵(默)
    29世
    규(圭)○
    30世
    ○호(鎬)
    31世
    운(雲)○
    32世
    ○모(模)
    33世
    현(顯)○
    34世
    ○준(準)
    35世
    진(鎭)○
    36世
    ○영(永)
    37世
    주(柱)○
    38世
    ○열(烈)
    39世
    재(在)○
    40世
    ○용(鏞)
    41世
    해(海)○
    42世
    표(杓)○
    43世
    노(魯)○
    44世
    ○길(吉)
    45世
    회(會)○
    46世
    ○택(澤)
    47世
    상(相)○
    48世
    ○훈(勳)
    49世
    선(善)○
    50世
    ○련(鍊)
    51世
    -
    52世
    -
    53世
    -
    54世
    -
    55世
    -
    56世
    -
    57世
    -
  • ※ 世와 代는 다른 것으로 世에서 1을 뺀 값이 代가 된다. (예: 19世孫은 18代孫)
  • 본관 연혁
     본관소재지 : 황해도 해주
    해주(海州)는 황해도 남해안에 위치한 도청소재지이다. 고조선시대에 대방군(帶方郡)에 속하여 고죽(孤竹)으로 불리었다. 고구려 때에는 내미홀(內米忽) 또는 지성(池城)·장지(長池) 등으로 불리우다가, 748년(신라 경덕왕 7)에 폭지군(瀑池郡)으로 바뀌었다. 936년(고려 태조 19)에 태조가 남쪽이 바다와 접하고 있다고 하여 해주를 사명(賜名)했으며 성종 때 와서는 별호로 대령(大寧)·서해(西海) 등으로 불리기도 하였다. 983년(성종 2)에 해주목으로 승격된 데 이어 1018년(현종 9)에 안서도호부로 개편되었고 1247년(고종 34)년에는 다시 해주목으로 환원되었다. 1616년(광해군 8) 현으로 강등되었다가 1623년(인조 1)에 다시 목으로 복구되었다. 1895(고종 32) 지방제도 개정으로 해주부가 설치되었고, 1896년 도제 실시로 황해도의 도청소재지가 되었다. 1945년 해주시로 개편되었다. 1954년 북한의 관제 정비로 황해남도에 편입되었다.
    인구수
    통계청의 인구조사에 의하면 해주정씨는
    1985년에는 8,427가구 34,736명, 2000년에는 10,998가구 35,434명,
    가장 최근인 2015년에는 45,101명으로 조사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