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래
시조 : 조주(趙注)
시조 조주(趙注)는 세종 때 문과에 급제하여, 호조참판(戶曹參判)을 지냈다고 한다.
그뒤 후손들이 그를 시조로, 강진(康津)을 본관으로 삼아 세계를 이어왔다.
주요 인물
과거급제자(조선시대)
조주(趙注) : 문과(文科) 세종11년(1429) 친시 을과(乙科) 장원급제
조양(趙揚, 1654 甲午生) : 무과(武科) 숙종10년(1684) 정시 병과(丙科)
조몽희(趙夢希, 1599 己亥生) : 무과(武科) 인조15년(1637) 별시 병과(丙科)
조담(趙談, 1607 丁未生) : 무과(武科) 인조15년(1637) 별시 병과(丙科)
* 모두 4명의 과거급제자가 있다.
(문과 1명, 무과 3명)
※ 과거급제자는 조선조방목 기록을 기준으로 한 것이므로 실제와 다를 수 있다.
본관 연혁
본관소재지 : 전라남도 강진
강진(康津)은 전라남도 남서해안에 위치하며, 옛 도강현(道康縣)과 탐진현(耽津縣)이 합쳐진 지명이다. 도강현은 백제 때는 도무군(道武郡)으로 757년(신라 경덕왕 16)에 양무군(陽武郡)으로 불리었고, 940년(고려 태조 23) 도강현으로 개칭되었으며, 1018년(현종 9) 영암군(靈巖郡)에 속하게 되었다. 1172년(명종 2)에 감무(監務)가 설치되었다. 탐진현은 백제의 동음현(冬音縣)으로 757년(경덕왕 16)에 탐진으로 고쳐서 양무군에 병합시켰고, 고려시대에는 영암에 속하였다가 뒤에 장흥(長興)의 속현이 되었다. 1417년(태종 17)에 병마도절제사영(兵馬都節制使營)을 도강의 옛 관청소재지로 옮겨 설치하고 탐진과 통합하여 강진으로 개편하였다. 관할 관청을 탐진에 두었다가 1429년(세종 11)에 도강의 송계(松溪)로 옮겼고 1475년(성종 6)에 다시 탐진으로 돌아갔다. 1895년(고종 32) 지방제도 개정으로 강진군이 되고 나주부(羅州府)가 관할하게 되었다. 1936년 강진면이 강진읍(康津邑)으로 승격되었다.
인구수
통계청의 인구조사에 의하면 강진조씨는
1985년에는 8가구 40명, 2000년에는 630가구 1,998명,
가장 최근인 2015년에는 0명으로 조사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