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래
시조 : 조자장(趙子長)
시조 조자장(趙子長)은 고려시대에 호장(戶長) 을지냈다.
조자장은 趙子張으로도 기록되어 있기도 하나 대부분의 족보에 趙子長으로 기록되어 있으므로 이를 따른다.
본관을 순창으로 한것은 고려 때 대장군에 오른 조인평(趙仁平)에서 비롯된것이며, 조인평을 시조로 기록된 문헌도 있으나 조인평은 조자장의 5세손이다.
인물
조인평(趙仁平)은 고려 명종 7년 계룡산의 토적을 토평하고 벼슬에 올라 금오위 랑장(金吾衛 郞將)에 오르고 대장군이 되었다.
조선시대의 인물로는 명종 때 목사 등을 역임하며 많은 치적을 남긴 조유성(淳惟誠), 영의정 유성룡(柳成龍)의 사위로 인조 때 이조참판을 지낸 조수익(淳壽益) 등이 있다.
주요 인물
과거급제자(조선시대)
조시겸(趙時謙, 1721 辛丑生) : 문과(文科) 영조26년(1750) 별시 갑과(甲科) 장원급제
조연(趙演) : 문과(文科) 중종3년(1508) 알성시 을과(乙科)
조병일(趙炳一, 1859 己未生) : 문과(文科) 고종29년(1892) 별시4 을과(乙科)
조명신(趙命臣, 1684 甲子生) : 문과(文科) 숙종40년(1714) 증광시 병과(丙科)
조침(趙琛) : 문과(文科) 중종10년(1515) 별시 병과(丙科)
조형겸(趙亨謙, 1714 甲午生) : 문과(文科) 영조23년(1747) 식년시 병과(丙科)
조수기(趙壽期, 1527 丁亥生) : 문과(文科) 명종16년(1561) 식년시 병과(丙科)
조유성(趙惟誠, 1526 丙戌生) : 문과(文科) 명종10년(1555) 식년시 갑과(甲科)
조종부(趙宗溥, 1715 乙未生) : 문과(文科) 영조27년(1751) 춘당대시 병과(丙科)
조훈(趙塤, 1583 癸未生) : 문과(文科) 광해군8년(1616) 증광시 병과(丙科)
등 모두 83명의 과거급제자가 있다.
(문과 17명, 무과 9명, 생원진사시 53명, 의과 3명, 음양과 1명)
※ 과거급제자는 조선조방목 기록을 기준으로 한 것이므로 실제와 다를 수 있다.
세거지
-임술보 : 1802년(순조 2년)
-무진보 : 1868년(고종 5년)
-계유보 : 1933년
-계묘보 : 1963년
-무진보 : 1988년
본관 연혁
본관소재지 : 전라북도 순창
순창(淳昌)은 전라북도 남쪽 중앙에 위치하는 지명이다. 원래 백제의 도실군(道實郡)인데, 신라가 삼국을 통일한 후 757년(경덕왕 16) 순화군(淳化郡)으로 고쳐 적성현(赤城縣)·구고현(九皐縣)을 영현(領縣)으로 관할하게 되었다. 940년(고려 태종 23) 순창(淳昌: 淳州)으로 이름을 고쳐 오늘날까지 이어지고 있다. 1018년(현종 9) 남원의 속현으로 병합되었다가 1175년(명종 5) 감무를 설치함으로써 독립하였다. 1314년(충숙왕 1)에 국사(國師)인 정오선사(丁午禪師)의 고향이라 하여 군으로 승격되어 조선시대에도 이어졌다. 조선 초에서도 계속 순창군(淳昌郡)으로 남원부에 속하였다. 1895년(고종 32) 지방제도 개정으로 남원부에서 독립하였고, 1896년 도제 실시로 전라북도에 소속되었다. 1914년 군면 폐합으로 임실군과 남원군의 일부가 편입되었다. 1935년 구암면(龜巖面)과 무림면(茂林面)을 통합하여 구림면으로 개편, 11개 면이 되었다. 1979년 순창면이 읍으로 승격되었다.
인구수
통계청의 인구조사에 의하면 순창조씨는
1985년에는 2,970가구 12,419명, 2000년에는 5,669가구 17,923명,
가장 최근인 2015년에는 34,069명으로 조사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