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래
시조 : 조용(趙庸)
시조 조용(趙庸)은 배천조씨의 시조 조지린의 11세손으로 1374년(고려 공민왕) 문과(文科)에 장원급제하고, 벼슬은 정헌대부, 예의판서, 좌찬성 겸 수전대제학을 역임했다.
그는 정몽주의 문인으로서 문장과 학행이 탁월하였는데 1392년(태조 1년) 조선이 개국되면서 벼슬에서 물러나 야주군(夜珠郡 : 예천)에 은거(隱居)하자 조정에서는 그의 절의를 가상히 여겨 진보군에 봉하하였다.
그가 죽은 후 학문과 품행을 추모한 후손들이 예천에 향현사를 건립하여 그를 제향케 했으며, 조정에서는 예문관대제학을 증직하였다.
그뒤 후손들이 배천에서 분관하여 진보를 본관으로 하였다.
인물
조선시대에 평사(評事)를 지낸 조이(趙耳)를 비롯하여 현령을 지낸 조담, 병마절도사를 지낸 조청(趙聽), 녹사(錄事)를 지낸 조극인(趙克仁), 사직(司直)의 조문행(趙文行), 첨절제사(僉節制使)의 조무행(趙武行) 등 관료들을 배출하였다.
조선(趙瑄)은 도호부사를 지냈고, 조충준(趙忠俊)은 만호를 지냈으며, 조충걸(趙忠傑)은 부호군, 조립은 첨지중추부사(僉知中樞府事)를 역임하였다.
주요 인물
과거급제자(조선시대)
조수천(趙壽天, 1544 甲辰生) : 무과(武科) 선조17년(1584) 별시 병과(丙科)
조우(趙○) : 생원진사시(生員進士試) 성종14년(1483) 식년시 삼등(三等)
조감(趙勘) : 생원진사시(生員進士試) 중종26년(1531) 식년시 삼등(三等)
* 모두 3명의 과거급제자가 있다.
(무과 1명, 생원진사시 2명)
※ 과거급제자는 조선조방목 기록을 기준으로 한 것이므로 실제와 다를 수 있다.
세거지
-경기도 안성군 공도면 중복리
-충남 천원군 입장면 가산리, 용정리
-충북 진천군 백곡면 대문리
본관 연혁
본관소재지 : 경상북도 청송
진보(眞寶)는 경상북도 청송군에 있는 지명으로 신라 때에는 칠파화현(漆巴火縣)이라 하다가 757년(신라 경덕왕 16)에 진보현으로 고치고, 문소군(聞韶郡: 義城)의 영현을 삼았다. 고려 태조 때 진안현(眞安縣)과 합쳐 보성부(甫城府)로 개편하였다. 1018년(현종 9) 예주(禮州: 寧海)에 편입시켰는데 왜구로 인해 그 지방을 비워 두었다가 조선 태조 때 현(縣)을 설치하였다. 세종 때 청부(靑鳧)를 합하여 청보군(靑寶郡)이라 하다가 진보로 고쳐 현으로 삼았다. 1474년(성종 5) 청송(靑松)에 편입하였다가, 1478년(성종 6) 다시 복구하였다. 1895년(고종 32)에 지방제도 개정으로 진보군이 되었고, 1896년 경상북도에 이속되었다. 1914년 군면 폐합으로 동면과 북면은 영양군(英陽郡)에 병합되었고, 나머지는 청송군(靑松郡)에 편입되었는데 그 중심지역은 진보면으로 남아 있다.
인구수
통계청의 인구조사에 의하면 진보조씨는
1985년에는 168가구 734명, 2000년에는 113가구 365명,
가장 최근인 2015년에는 637명으로 조사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