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래
시조 조만(趙萬)은 조선 세조 때 장사랑(將士郞)에 올랐으나 문헌이 전하지 않아 조상의 계보는 고증할 수 없다. 시조 조만(趙萬)이 난을 피하여 함경도 북청지방에 가서 정착하여 살면서 본관을 태원(太原)으로 하였다고 한다.
인물
조만(趙萬)의 아들 조을생(趙乙生)이 장사랑(將仕郞)에, 손자 조경종(趙敬宗)은 통훈대부(通訓大夫)에 이르렀으며, 조경종의 아들 3형제 중 맏아들 조희령(趙熙寧)이 참봉(參奉)을 지냈고, 막내 조희형(趙熙亨)은 통훈대부(通訓大夫)에 이르렀다.
어모장군(禦侮將軍) 조세운(趙世雲)은 참봉을 지낸 조희령(趙熙寧)의 아들이며, 동생 조세복(趙世福)은 통훈대부(通訓大夫)에 올라 참봉(參奉)을 지낸 조옥룡(趙玉龍), 조윤헌(趙允憲), 조호상(趙豪尙)과 함께 가문을 빛냈다.
본관 연혁
본관소재지 : 충청북도 충주
태원(太原)은 충청북도 중앙부에 위치하고 있는 충주(忠州)의 옛 지명이다. BC 3∼4세기에는 마한에 속하였다. 그 뒤 마한이 백제에 병합되었으나, 다시 고구려에 속해 475년(고구려 장수왕 63) 국원성(國原城)이라 하였다. 557년(신라 진흥왕 18) 국원소경(國原小京)이라 하였고, 757년(경덕왕 16) 중원소경(中原小京)이라 개칭하였다. 940년(고려 태조 23) 충주라 개칭하였고, 983년(성종 2) 충주목(忠州牧)이라고 하였다. 995년(성종 14) 창화군(昌化軍)으로 바꾸고 절도사(節度使)를 파견하여 중원도(中原道)에 속하게 하였다. 1012년(현종 3)에 안무사로 바뀌었다가 1018년에 전국의 8개목 중 하나가 설치되어 양광도(楊廣道)에 소속되었다. 1254년(고종 41)에 국원경(國原京)으로 승격되었다가 뒤에 다시 목으로 환원되었으며 1310년(충선왕 2)에는 충주로 강등되었다. 1356년(공민왕 5)에 다시 충주목이 되었다. 1395년(태조 4) 충청도관찰사를 두었으며, 명종·광해군·인조·숙종·영조 등 여러 시기에 모반 등으로 인해 유신현(維新縣) 또는 충원현(忠原縣)으로 개칭되면서 현으로 강등되기도 하였다. 1895년(고종 32) 지방제도 개정으로 충주부 충주군이 되었다가, 1896년에 13도제 실시로 충주부가 폐지되었고 충청북도의 도청소재지가 되었다. 1908년(순종 2) 도청을 청주로 이전시키고 군수를 두었다. 1917년 충주군 읍내면이 충주면으로 개칭되었고, 1956년 7월 충주읍이 시로 승격되면서 나머지 지역은 중원군으로 분리되었다. 1989년 중원군 살미면 목벌리(木伐里)와 이류면 만정리(萬井里) 일부를 충주시에 편입하였고, 1995년 충주시와 중원군이 통합하여 충주시가 되었다.
인구수
통계청의 인구조사에 의하면 태원조씨는
1985년에는 49가구 237명, 2000년에는 109가구 329명,
가장 최근인 2015년에는 0명으로 조사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