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뿌리를 찾아서 ... |
![]() |
|
www.rootsinfo.co.kr |
성씨의 종류와 유래
성씨의 역사
족보 이야기
친인척 호칭법
국가 연대표
역대왕 연대표
성씨별 인구순위
본관별 인구순위
고사성어
![]() ![]() ![]() |
![]() 평양조씨(平壤趙氏)
유래
시조 : 조춘(趙椿)
시조 조춘(趙椿)의 선조는 중국 사람으로 어느 시대에 우리나라에 들어왔다는 기록은 없으며, 고려 예종과 의종 때의 인물이다. 그는 고려때 금자광록대부(金紫光祿大夫)로서 남송에 가서 금나라를 토평한 공으로 송나라 상장군(上將軍)이 되었다. 그의 5세손 조인규(趙仁規)의 딸이 충숙왕의 왕비가 되자 선충익재 보조공신(宣忠翼載 輔祚功臣)에 책록되고 문하시중 태사(門下侍中 太師)로 평양부원군에 봉해져서 충렬왕의 명에 따라 본관을 상원(詳原)에서 평양으로 바꾸었다. 인물
조준(趙浚)은 1374년(우왕 원년) 문과에 급제하고 여러 관직을 거쳐 전법판서(典法判書)에 올랐다. 1382년 최영(崔瑩)의 휘하에서 체찰사(體察使)가 되어 왜구를 토벌했고 이어 강원도에 쳐들어온 왜구를 토벌한뒤 벼슬에서 은퇴해 있다가 1388년 위화도 회군으로 이성계의 세력이 강화되자 대사헌(大司憲)에 올랐다. 1390년 지문하부사(知門下府事)가 되어 토지개혁을 단행 구세력의 토지기반을 박탈하여 조선개국의 경제기반을 굳게했다. 1392년 정도전(鄭道傳) 등과 이성계를 추대하여 개국공신 1등으로 병권을 장악했으나 세자책봉문제로 태조와 의견이 엇갈려 사직하고 1400년 다시 태종 이방원을 옹립하여 영의정에 올랐다. 토지제도에 해박하고 시문에도 뛰어났다.
조성(趙晟)은 1513년 중종 8년 생원시(生員試)에 합격하고 의약, 산수, 천문, 지리 등에 정통하여 의(醫), 산(算), 율(律)의 삼학교관(三學敎官)을 지냈다. 뒤에 부사과(副司果)를 거쳐 의영고령(義盈庫令)에 이르렀다. 성리학(性理學)에 밝았으며 글씨에도 능했다. 조욱(趙昱)은 1516년 중종11년 생원, 진사 양시에 합격, 용문산에 은거하며 학문이 알려져 용문선생(龍門先生)으로 일컬어졌다. 명종때 성수침, 조식(曺植), 성제원(成悌元) 등과 함께 현사(賢士)로 뽑혀 내섬사주부(內贍寺主簿)가 되고, 장수현감(長水縣監)에 이르렀다. 시문과 서화에 능했으며 이조참의에 추증되었다. 주요 인물
과거급제자(조선시대)
조정(趙○, 1676 丙辰生) : 문과(文科) 영조2년(1726) 별시 병과(丙科)
조유신(趙由信) : 문과(文科) 세종11년(1429) 식년시 병과(丙科) 조광옥(趙光玉, 1501 辛酉生) : 문과(文科) 중종34년(1539) 별시2 병과(丙科) 조숙종(趙叔宗) : 문과(文科) 문종1년(1451) 증광시 병과(丙科) 조신호(趙信鎬, 1863 癸亥生) : 문과(文科) 고종22년(1885) 별시 병과(丙科) 조호문(趙好問) : 문과(文科) 명종10년(1555) 식년시 병과(丙科) 조양문(趙揚門) : 문과(文科) 성종11년(1480) 식년시 병과(丙科) 조인후(趙仁後, 1541 辛丑生) : 문과(文科) 선조1년(1567) 식년시 병과(丙科) 조경진(趙景○, 1579 己卯生) : 문과(文科) 광해군11년(1619) 별시 병과(丙科) 조번(趙○) : 문과(文科) 단종1년(1453) 증광시 정과(丁科) 등 모두 179명의 과거급제자가 있다. (문과 27명, 무과 31명, 생원진사시 72명, 역과 32명, 의과 12명, 음양과 2명, 율과 3명) 세거지
-경기도 양평군 용문면
-충남 서산군 성동면, 부석면, 원북면, 이북면 본관 연혁
본관소재지 : 평안남도 평양
평양(平壤)은 평안남도 남서부에 위치한 지명으로 단군조선에 이어 BC 813년 기자(箕子)의 후조선을 거쳐 BC 194년 위만조선의 수도가 되었다. BC 108년에는 한사군이 설치되면서 낙랑군에 속했으나 313년(미천왕 13) 낙랑군이 멸망하였고, 427년(장수왕 15)부터 240년간 고구려의 도읍지로서 전성기를 누렸다. 668년(보장왕 27) 고구려가 멸망한 후 당(唐)의 안동도호부에 속하였다가 676년 통일신라의 변방으로 수복되었다. 919년(고려 태조 2)에는 평양성을 축조하고 대도호부(大都護府)로 정하였으며, 926년(태조 6)에 서경이라고 불렀다. 1269년(원종 10)에 서경에 동녕부(東寧府)를 두고 파령(破嶺: 慈悲嶺)으로 경계를 삼았다가 1290년(충렬왕 16)에 다시 서경유수를 두었다. 1369년(공민왕 18)에 만호부(萬戶府)를 두었다가 평양부로 개칭하였다. 1413년(태종 13)에 평안도 평양부로 개편하여 관찰사가 부윤(府尹)을 겸임하였다. 1895년(고종 32) 지방제도 개정으로 23부(府)의 하나가 되었다. 1896년 전국을 13도(道)로 분할함에 따라 평남 도청소재지가 되었다. 1914년 군면 폐합으로 부제(府制)가 실시되었고 대동군이 평양부에서 독립되었다. 1946년 특별시로 승격되면서 평안남도와 분리되고 중구역·동구역·서구역·남구역·북구역 등 5개 구역으로 구획했으며, 1958년 대성구역을 신설하였다. 인구수
통계청의 인구조사에 의하면 평양조씨는
1985년에는 8,451가구 35,025명, 2000년에는 12,720가구 41,047명, 가장 최근인 2015년에는 50,480명으로 조사되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