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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풍양조씨(豊壤趙氏)
유래
시조 : 조맹(趙孟)
시조 조맹(趙孟)의 원래 이름은 바우(岩)이다. 그는 풍양현(현 남양주군 진건면 송능리)에서 태어나 농사를 지으며 천마산 기슭 바위동굴에 은둔해 살았던 도인이었다. 당시 신라를 정벌하던 왕건은 영해지방 전투에서 신라군에 참패를당하여 휘하의 장군들을 모아놓고 중지를 모았을때 한결같은 대답은 풍양현에 숨어 사는 바우도인의 지략을 빌리자는 것이었다. 이에 왕건이 그를 찾으니 당시 나이가 70세이었다. 이때부터 신라정벌의 길에 올라 뛰어난 지략과 용맹으로 고려통일을 이루자 태조 왕건이 맹으로 이름을 내렸다. 벼슬은 문하시중(門下侍中) 평장사(平章事)이르렀고, 지금도 천마산에는 왕건을 만났다는 암굴(巖窟)이 있으며 현성암(見聖庵)을 세워 그를 수호하여 온다. 인물
고려때의 조운걸은 1357년(공민왕 6년)에 문과급제하고 홍건적의 침입으로 남쪽에 피난하는 왕을 시종하여 2등공신에 올랐고 그후 3도안찰사를 지내고 1374년에는 벼슬을 버리고 상주에 은거하고 출입할 때는 소를 타고 다니면서 "기우도(騎牛圖)"등의 작품을 남겼다.
풍양조씨 가문이 세도의 기반을 이룬것은 조선 숙종이후. 상신 7명, 대제학 4명, 공신 7명, 장신 7명을 냈다. 숙종 때 조도보는 조상경, 조상강, 조상기 등 아들 3 형제와 손자 8명이 있었는데 이들중 5명이 문과에 급제했다. 이들이 영조, 정조시대에 풍양조씨의 세력 기반을 다진 주역들이다. 학당 조상강은 영조때 병조판서를 네차례, 이조판서를 다섯차례 지냈다. 그의 증손자 조만영(趙萬永)은 순조의 외할아버지로 이때부터 풍양조씨의 세도정치가 시작된다. 영조 때 통신사로 일본에 갔다오면서 고구마 종자를 들여온 조엄은 조만영의 할아버지이다. 그밖에 조선시대 성리학의 대가로 효종 때 좌의정에 올랐던 조익(趙翼), 숙종 때의 우의정 조상우(趙相愚), 영조 때의 좌의정 조문명(趙文命), 영조 때의 영의정 조현명(趙顯命), 영조 때의 우의정 조재호(趙載浩) 등이 회양공파이다. 현종 때 대제학을 지낸 조복양(趙復陽), 왜정때 상주에서 궐기하여 싸우다 일본 군경에 체포되어 순국한 조동범 등이 있으며, 현재 활약중인 바둑계의 천재기사 조치훈과 조순 전부총리도 이 가문에서 배출된 인물이다. 주요 인물
과거급제자(조선시대)
조수인(趙守寅, 1568 戊辰生) : 문과(文科) 선조30년(1597) 별시 갑과(甲科) 장원급제
조진관(趙鎭寬, 1739 己未生) : 문과(文科) 영조51년(1775) 구현과 갑과(甲科) 장원급제 조정(趙晸, 1719 己亥生) : 문과(文科) 영조44년(1768) 식년시 갑과(甲科) 장원급제 조진형(趙鎭衡, 1714 甲午生) : 문과(文科) 영조38년(1762) 식년시 갑과(甲科) 장원급제 조득영(趙得永, 1762 壬午生) : 문과(文科) 정조13년(1789) 별시 갑과(甲科) 장원급제 조재준(趙載俊, 1730 庚戌生) : 문과(文科) 영조42년(1766) 정시 갑과(甲科) 장원급제 조경명(趙景命, 1674 甲寅生) : 문과(文科) 경종2년(1722) 정시 갑과(甲科) 장원급제 조항진(趙恒鎭, 1738 戊午生) : 문과(文科) 정조6년(1782) 비천당문과 갑과(甲科) 장원급제 조기영(趙冀永, 1781 辛丑生) : 문과(文科) 순조14년(1814) 정시 갑과(甲科) 장원급제 조세영(趙世英) : 문과(文科) 중종16년(1521) 별시 갑과(甲科) 장원급제 등 모두 599명의 과거급제자가 있다. (문과 186명, 무과 15명, 생원진사시 395명, 의과 1명, 주학 2명) 세거지
경북 상주군 낙동면 승곡리.
마을의 대부분이 호군공파 후손들로 20여대를 이어 살고있는 마을이다. 마을 입구에 자리잡은 퇴색한 단청과 이끼낀 기와집이 450년 마을의 역사를 말해준다. 마을 한가운데 낮은 야산 밑에 자리한 양진당(養眞堂)은 난중일기를 쓴 조정(趙靖)이 여생을 보냈던 99칸 기와집으로 호군공파 후손들의 마음의 고향이다. 1982년에 문중에서는 이곳을 보존하기 위해 문화재로 지정받고 보수정화 작업을 시작했다. 본관 연혁
본관소재지 : 경기도 남양주
풍양(豊壤)은 경기도 양주(楊州)의 옛 지명으로 원래 백제와 고구려에 속했을 때는 골의노현(骨衣奴縣)이라 불렸는데, 757년(신라 경덕왕 16)에 황양(荒壤)으로 고쳐 한양군(漢陽郡)의 영현이 되었다. 940년(고려 태조 23)에 풍양으로 고쳐 양주에 속하였다. 1018년(현종 9) 포주(抱州: 抱川)에 이속되었다. 1427년(세종 9)에 다시 양주에 속하게 되었다. 1980년에 양주군으로부터 신설된 남양주군에 편입되었다. 1995년 미금시와 남양주군이 통합하여 남양주시가 되었다. 인구수
통계청의 인구조사에 의하면 풍양조씨는
1985년에는 25,894가구 109,434명, 2000년에는 35,009가구 113,798명, 가장 최근인 2015년에는 124,262명으로 조사되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