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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횡성조씨(橫城趙氏)
    유래
     시조 : 조익(趙翌)
    시조는 조익(趙翌)으로 조욱(趙昱)이라고도 하는데 고려사 연표에는 조익으로 적혀있다.
    중국 주나라의 목왕(穆王)이 서언왕(徐堰王)을 정벌할 때 조부(造夫)가 공을 세워 조성(趙城)에 봉해졌으므로 나라이름을 따서 성을 조씨라고 하여 조씨가 시작되었다 한다. 그후 주나라가 진나라 안국군(安國君)에게 망한 후 고려 정종 때 조첨(趙瞻)이 우리나라에 들어와 평장사(平章事)를 지냈다고 한다.

    시조 조익(趙翌)은 조첨의 후손(일부 기록은 아들로 되어있음)으로 965년(고려 광종 9년) 처음실시한 과거에 장원급제하고, 벼슬이 한림학사에 이른 그의 품행이 깨끗하고 덕이 높아 광종이 횡성군에 봉함으로써 후손들이 본관을 횡성으로 하였다.
    인물
    고려시대에 문하시중을 지낸 조승인(趙承藺)을 비롯하여 중서승(中書丞)을 지낸 조주조(趙周祚), 합문저후를 지낸 조정신(趙正臣), 상서의 조시언(趙時彦) 등 많은 관직자를 배출하면서 가문이 번영하였다.
    조영인(趙永仁)은 고려 의종 때 문과에 급제하여 기사를 지내다가 명종이 즉위하자 태자의 보도(輔導)를 맡았는데 1174년 좌사원외랑(左司員外郞)으로 정조사가 되어 금나라에 다녀왔으며 참지정사, 문하시랑평장사를 역임하고 1201년 특명으로 문하시중에 올랐다.
    조영인의 아들 조충(趙沖)은 음보로 벼슬에 등용된 후 명종 때 문과에 급제하고 동지공거(同知貢擧)를 역임하고 문무를 겸비해 거란군을 대파했으며 평장사에 이르렀다.
    조계순은 평장사를 지냈고, 조변은 원종 때에 낭장 겸 감찰사(郞將 兼 監察史)를 지내고 1284년 대장군을 거쳐 우부승지를 역임하고 지밀직사사(知密直司事)에 이르렀는데 전고(典故)에 통달한 인물이었다.

    조선 인조 때의 인물인 조응영(趙應榮)은 1627년 이인거(李仁居)가 횡성서 변란을 일으켰을 때 토평에 공을 세워 소무원종공신(昭武原從功臣)에 책록되었고, 선조 때의 조목(趙穆)은 이황(李晃)의 문하생으로 공조참판을 역임, 일생을 학문에만 힘써 대학자로 존경을 받았으며 문장과 글씨에도 뛰어나 "월천집(月川集)" "곤지잡록(困知雜錄)" 등의 저서를 남겼다. 그리고
    조신인(趙臣仁)은 도승지, 조성입(趙誠立)은 목사를 지내면서 선정을 베풀었고, 조정입(趙正立)은 직제학, 조식(趙湜)은 관찰사를 역임하였다.
    주요 인물
    과거급제자(조선시대)
     조식(趙湜, 1648 戊子生) : 문과(文科) 숙종12년(1686) 춘당대시 갑과(甲科) 장원급제
     조중립(趙中立, 1557 丁巳生) : 문과(文科) 선조30년(1597) 별시 을과(乙科)
     조정립(趙正立, 1560 庚申生) : 문과(文科) 선조24년(1591) 별시 병과(丙科)
     조장(趙章) : 문과(文科) 세종8년(1426) 식년시 동진사(同進士)
     조성립(趙誠立, 1568 戊辰生) : 문과(文科) 선조32년(1599) 별시 을과(乙科)
     조석붕(趙錫朋, 1585 乙酉生) : 문과(文科) 광해군7년(1615) 식년시 갑과(甲科)
     조오(趙○) : 문과(文科) 세종5년(1423) 식년시 병과(丙科)
     조방립(趙方立, 1595 乙未生) : 무과(武科) 인조15년(1637) 별시 병과(丙科)
     조응립(趙應立, 1608 戊申生) : 무과(武科) 인조15년(1637) 별시 병과(丙科)
     조예남(趙禮男, 1613 癸丑生) : 무과(武科) 인조15년(1637) 별시 병과(丙科)
    등 모두 25명의 과거급제자가 있다.
    (문과 7명, 무과 3명, 생원진사시 14명, 역과 1명)
  • ※ 과거급제자는 조선조방목 기록을 기준으로 한 것이므로 실제와 다를 수 있다.
  • 세거지
    -강원도 횡성군 우천면 정암리
    -강원도 횡성군 횡성면 청룡리
    -강원도 인제군 기린면 현리
    -충북 보은군 산외면 장갑리
    -경북 안동군 예안면 동천동
    -함경남도 안변군 문산면 근외리
    본관 연혁
     본관소재지 : 강원도 횡성
    횡성(橫城)은 강원도 남서부에 위치하는 지명으로 고구려 때인 475년(고구려 장수왕 63)까지 횡천현(橫川縣) 또는 어사매(於斯買)라 부르다가, 551년(양원왕 7)부터 신라의 권역이 되었다. 757년(신라 경덕왕 16)에는 황천현(黃川縣)이라 고치고 삭주(朔州: 春川)의 관할이 되었다. 940년(고려 태조 23)에 다시 횡천으로 바꾸었고, 1018년(현종 9)에 삭주에 병합시켰다가, 후에 원주(原州)의 속현으로 하였다. 1389년(공양왕 1)에 감무를 두면서 독립하였다. 1413년(태종 13) 횡천현이 되었고, 조선시대 동안 유지되었다. 1627년(인조 5)에 현이 폐지되었다가 1636년(인조 14) 다시 복원되었고, 현이 폐지된 동안에 화전(花田) 또는 화성이라 불리기도 하였다. 1760년(영조 36)에는 원주로부터 토포사(討浦使)가 이설되었다. 1895년(고종 32) 지방제도 개정으로 춘천부 횡성군이 되었고, 1896년 강원도 횡성군이 되었다. 1937년 군내면이 횡성면으로 이름을 바꾸었고 1979년에 횡성면이 읍으로 승격하였다.
    인구수
    통계청의 인구조사에 의하면 횡성조씨는
    1985년에는 1,106가구 4,461명, 2000년에는 1,648가구 5,337명,
    가장 최근인 2015년에는 6,685명으로 조사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