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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성씨의 종류와 유래 성씨의 역사 족보 이야기 친인척 호칭법 국가 연대표 역대왕 연대표 성씨별 인구순위 본관별 인구순위 고사성어


     
    초계주씨(草溪周氏)
    유래
     시조 : 주황(周璜)
    주씨는 중국 주나라의 왕손으로 주나라가 망한 후에 후손들이 성을 주씨라 하게 되었다 한다.
    후손 주황(周璜)이 당나라 말에 한림학사로 있다가 신라 효공왕 11년 "오계의 난(五李之亂)"을 피하여 변(卞), 정(鄭) 두학사와 우리나라에 들어와서 초계 지방에 살았으므로 주황을 시조로 하고 본관을 초계로 하였다.
    초계주씨 족보에 의하면 주황의 후손에서 상주(14세손), 장흥(12세손), 삼계(12세손), 함안(12세손), 안의(13세손) 등으로 본관이 나뉘었다고 한다. 그러나 이들 종친회의 주장은 이와는 다르다.
    인물
    고려시대에 예부상서를 지낸 주세후(周世侯)를 비롯하여 검교태자태사(檢校太子太師)를 지낸 주호(周鎬), 평장사를 지낸 주렴(周濂), 호조판서를 지낸 주원의(周原義) 등 여러 관직자들을 배출하면서 번영하였다. 특히 주형에 이르러서는 초계주씨 가문에 번영을 더하였는데 그는 공민왕 때 문과에 급제하고 예의판서를 지냈으며 조선이 개국되고 태조가 형조판서를 임명했으나 거절하고 나가지 않았다.
    주희(周禧)는 공조판서를 지냈고, 주세흥(周世興)은 호조참판을 지냈는데 중종 때 정국원종공신(靖國原從功臣)으로 금성군에 봉해졌다. 그리고 주몽득(周夢得)은 첨지중추부사(僉知中樞府事)를 지냈으며 임진왜란 때 추령에서 왜적을 나무로 만든 활로 대파했다.
    과거급제자(조선시대)
     주설(周渫, 1606 丙午生) : 무과(武科) 인조15년(1637) 별시 병과(丙科)
     주세필(周世弼) : 생원진사시(生員進士試) 중종5년(1510) 식년시 삼등(三等)
     주한(周漢) : 생원진사시(生員進士試) 중종26년(1531) 식년시 이등(二等)
     주채형(周采灐, 1833 癸巳生) : 생원진사시(生員進士試) 철종12년(1861) 식년시 삼등(三等)
     주문엽(周文燁, 1694 甲戌生) : 생원진사시(生員進士試) 영조11년(1735) 증광시 삼등(三等)
     주계강(周繼康) : 역과(譯科) 선조3년(1570) 식년시 ()
    * 모두 6명의 과거급제자가 있다.
    (무과 1명, 생원진사시 4명, 역과 1명)
  • ※ 과거급제자는 조선조방목 기록을 기준으로 한 것이므로 실제와 다를 수 있다.
  • 세거지
    -강원도 삼척군 원덕면 호산리
    -충북 옥천군 안남면 연단리
    -충북 옥천군 이완면 이완리
    -충북 괴산군 증평읍 남하리
    -충남 금산군 제원면 일원
    -충남 천원군 동면 동산리
    -충남 청양군 대치면 이화리
    본관 연혁
     본관소재지 : 경상남도 합천
    초계(草溪)는 현재 경상남도 합천군 초계면 지역으로 신라 때는 초팔혜현(草八兮縣)이라 불리었고, 757년(신라 경덕왕 16) 팔계로 고쳐 강양군의 영현으로 삼았다. 940년(고려 태조 23) 초계로 명칭을 고쳤고, 1334년(고려 충숙왕 3)에는 초계현이 군으로 승격되었다. 1914년 군면 폐합으로 합천군 초계면이 되었다.
    인구수
    통계청의 인구조사에 의하면 초계주씨는
    1985년에는 1,493가구 6,331명, 2000년에는 2,026가구 6,665명,
    가장 최근인 2015년에는 8,713명으로 조사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