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래
시조 : 주중소(朱仲紹)
주중소(朱仲紹, 朱中紹)는 고려 목종2년 이부시랑(吏部侍郞) 봉명(奉命)을 지냈다고 한다.
문헌이 없어 세계나 본관의 유래는 알 수 없으나 후손들이 그를 시조로, 나주(羅州)를 본관으로 삼아 세계를 이어왔다.
인물
상서좌복야(尙書左僕射) 주덕명(朱德明)과 압해(押海)로 분적(分籍)한 주현진(朱玄進) 등이 나타나며 호장(戶長) 주적(朱迪)이 일파로 전해온다.
주요 인물
과거급제자(조선시대)
주순(朱順) : 무과(武科) 중종8년(1513) 식년시 갑과(甲科) 장원급제
주복흥(朱福興, 1601 辛丑生) : 무과(武科) 인조14년(1636) 별시 병과(丙科)
주인원(朱仁元, 1612 壬子生) : 무과(武科) 효종2년(1651) 별시 병과(丙科)
주귀업(朱貴業, 1647 丁亥生) : 무과(武科) 숙종12년(1686) 별시 병과(丙科)
주희창(朱希昌, 1616 丙辰生) : 무과(武科) 인조15년(1637) 별시 병과(丙科)
주정하(朱鼎夏, 1693 癸酉生) : 의과(醫科) 숙종45년(1719) 증광시
* 모두 6명의 과거급제자가 있다.
(무과 5명, 의과 1명)
※ 과거급제자는 조선조방목 기록을 기준으로 한 것이므로 실제와 다를 수 있다.
본관 연혁
본관소재지 : 전라남도 나주
나주(羅州)는 전라남도 나주시(羅州市) 지역으로 백제 때 발라군(發羅郡)으로 불리었고, 뒤에 죽군성(竹軍城)으로 바뀌었다. 백제 멸망 후 당나라가 이곳에 대방주(帶方州)를 설치하였으며, 686년(신라 신문왕 6)에는 통의군(通義郡)으로, 757년(경덕왕 16) 이후로는 금산군(錦山郡) 또는 금성군(錦城郡)으로 부르며 무주(武州: 光州)의 관할로 두었고, 회진현(會津縣)·여황현(艅艎縣)·철야현(鐵冶縣) 등이 부속으로 영입되었다. 940년(고려 태조 23)에 나주로 지명이 바뀌었고, 983년(성종 2)에 나주목이 설치되었다. 995년(성종 14)에는 나주진해군절도사(羅州鎭海軍節度使)가 되었다. 1018년(현종 9) 다시 나주목으로 고쳐 5개의 속군(무안·담양·곡성·낙안·남평)과 11개의 속현(철야·반남·안노·복룡·원율·여황·창평·장산·회진·진원·화순)을 거느렸다. 1310년(충선왕 2)에 지주사(知州事)로 강등되었다가 1356년(공민왕 5)에 다시 목으로 승격하였다. 고려·조선시대를 통하여 주로 목(牧), 부(府)로서 전남지역 행정의 중심지를 이루었다. 1895년(고종 32) 지방제도 개정으로 나주부로서 나주군 등을 관할하였고, 1981년 나주읍과 영산포읍이 통합하여 금성시로 승격하여 나주군에서 분리되었고, 금성시는 1985년 나주시로 개칭되었다. 1995년 나주시와 나주군이 통합되어 나주시로 개편되었다.
인구수
통계청의 인구조사에 의하면 나주주씨는
1985년에는 221가구 1,100명, 2000년에는 581가구 1,931명,
가장 최근인 2015년에는 1,308명으로 조사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