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래
시조 : 즙간부(汁幹夫)
즙간부(汁幹夫)는 일본계 한국인으로 일본 이름은 辻幹夫(츠지 미키오)이다. 일제강점기에 철도 공무원으로 조선에 파견 온 일본인 츠지(辻)씨와 한국인 어머니 사이에서 태어났다. 즙간부가 10대 때인 1954년 어머니를 따라 한국으로 귀화하면서 성을 즙(汁)으로 하고 어머니의 고향인 함경북도 성진을 본관으로 호적에 등록하였다. 원래 츠지(辻)씨이었으나 한국어 발음은 십(辻)이되므로 비슷한 발음인 즙(汁)으로 호적에 올렸다고 한다.
성씨가 매우 희귀하지만 동시에 특이하기 때문에 놀림을 받자 그의 자녀들은 어머니 성으로 바꾸었다고 한다. 따라서 즙간부가 처음이자 마지막 즙씨가 된다.
본관 연혁
본관소재지 : 함경북도 성진시
성진(城津)은 함경북도 동해안에 있는 시이다. 1398년(태조 7) 정도전(鄭道傳)으로 하여금 북도의 행정구역을 분정하게 할 때 이곳은 길주목 성진첨사(城津僉使) 관하의 성진진(城津鎭)이었다.
1614년(광해군 6) 소파온고성 자리에 석성을 쌓고 첨사(僉使)를 두었다가 1701년(숙종 27)에 방어영(防禦營)을 설치하였다. 1749년(영조 25)에 첨사로 하여금 방수장(防守將)을 겸직하게 하였다가 1895년에 폐지되었다. 1898년에는 길주군 성진첨사 관하의 성진진과 동해면 일부 및 함경남도 단천군 이하면 좌측을 합한 지역을 분할하여 함경북도 성진군으로 독립되었다. 다음해 마산·군산과 더불어 개항장(開港場)이 됨에 따라 외국인 거류 구역이 설정되면서 일개 어촌이 차츰 항구도시의 면모를 갖추기 시작하였다. 배후지의 지하자원과 임산 개발에 의한 광석과 목재의 집산항으로 발전함과 동시에 고주파 제강 공장 및 마그네사이트·내화연와 공장(耐火煉瓦工場) 등이 잇따라 건설됨에 따라 공업 도시로서도 크게 번창하여 1943년에는 함경북도 성진시(城津市)로 승격되었다. 광복 후에는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이 점령하였으며, 1951년 2월 성진시(城津市)가 함경북도 김책시(金策市)로 개칭되었다.
인구수
통계청의 인구조사에 의하면 성진즙씨는
1985년에는 0명, 2000년에는 2가구 4명,
가장 최근인 2015년에는 0명으로 조사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