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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강릉진씨(江陵陳氏)
    유래
     시조 : 진신언(陳臣彦)
    시조 진신언(陳臣彦)은 여양진씨(驪陽陳氏) 시조 진총후(陳寵厚)의 11세손으로 전의소감(典醫少監)을 지냈다고 한다.
    진총후(陳寵厚)의 현손(玄孫)인 동정공(同正公) 진신(陳信)이 강릉으로 이주하였고, 진신언(陳臣彦)이 조선 태조 때 개국원종공신(開國原從功臣)으로 예원군(預原君)에 봉해졌으므로 후손들이 여양진씨에서 분관하여 강릉을 본관으로 삼아 세계를 이어왔다.

    현재는 여양진씨대동보(驪陽陳氏大同譜)에 환보(還譜)하여 여양진씨로 일원화하였다.
    과거급제자(조선시대)
     진재박(陳在搏, 1697 丁丑生) : 문과(文科) 경종3년(1723) 식년시 병과(丙科)
     진상점(陳尙漸, 1622 壬戌生) : 문과(文科) 현종4년(1663) 식년시 병과(丙科)
     진동인(陳東仁, 1874 甲戌生) : 생원진사시(生員進士試) 고종31년(1894) 식년시 삼등(三等)
     진상점(陳尙漸, 1622 壬戌生) : 생원진사시(生員進士試) 현종1년(1660) 식년시 삼등(三等)
     진대유(陳大猷, 1541 辛丑生) : 생원진사시(生員進士試) 선조9년(1576) 식년시 삼등(三等)
     진후박(陳後搏, 1647 丁亥生) : 생원진사시(生員進士試) 숙종4년(1678) 증광시 삼등(三等)
     진양준(陳良俊, 1874 甲戌生) : 생원진사시(生員進士試) 고종31년(1894) 식년시 삼등(三等)
    * 모두 7명의 과거급제자가 있다.
    (문과 2명, 생원진사시 5명)
  • ※ 과거급제자는 조선조방목 기록을 기준으로 한 것이므로 실제와 다를 수 있다.
  • 본관 연혁
     본관소재지 : 강원도 강릉
    강릉(江陵)은 기원전부터 성읍국가인 예맥족(濊貊族)의 예국(濊國)이 있던 지역으로 127년 이후에는 창해(滄海)와 임둔(臨屯)에 속하였다. 313년(고구려 미천왕 14)에 하서랑(河西良) 또는 하슬라(河瑟羅)라 불리었다. 550년(신라 진흥왕 11) 신라의 영토로 편입되었고, 639년(선덕여왕 8) 2월에는 북소경(北小京)을 두었고, 658년(무열왕 5) 말갈족과 인접해 있다는 이유로 소경을 폐지하고 하서주(河西州)로 개편하여 도독을 두었다. 757년(경덕왕 16) 명주(溟州)로 개편하여 명주도독부(溟州都督府)를 두었고 9군 25현을 관할하였다. 936년(고려 태조 19)에는 동원경(東原京)이라 칭하고 임영관(臨瀛館)을 두었다. 그 후 우계(羽谿)·연곡(連谷)의 두 현을 두었다가, 1260년(원종 1) 공신 김홍취의 고향이라하여 경흥도호부(慶興都護府)로 승격되었다. 1389년(공양왕 1)에는 강릉대도호부(江陵大都護府)가 설치되었다. 1789년(정조 12)에 강릉부가 되었다. 1896년(고종 33) 강릉군으로 개칭하였다. 1931년 강릉면이 강릉읍으로 승격되었고, 1955년 강릉읍·성덕면·경포면을 통폐합하여 강릉시로 승격하면서 명주군을 분리시켰다가 1995년 강릉시와 명주군을 강릉시로 통합하였다.
    인구수
    통계청의 인구조사에 의하면 강릉진씨는
    1985년에는 290가구 1,211명, 2000년에는 1,384가구 4,284명,
    가장 최근인 2015년에는 1,937명으로 조사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