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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나주진씨(羅州陳氏)
    유래
     시조 : 진온(陳溫)
    시조 진온(陳溫)은 여양진씨(驪陽陳氏) 시조 진총후(陳寵厚)의 증손자로 고려 강종 때 문과에 급제하여 한림학사(翰林學士), 예빈경(禮賓卿), 지공주사(知公州事)를 지내고 지나주사(知羅州事)를 지냈는데 학문에 뛰어나고 척불숭유(斥佛崇儒)를 주장했다고 한다.
    그뒤 후손 중 일부가 여양진씨에서 분관하여 나주를 본관으로 삼아 세계를 이어왔다.
    최근에 '여양진씨대동보(驪陽陳氏大同譜)'에 합보(合譜)하였다.

    - 고려 초에 대장군(大將軍)을 지낸 진영략계(陳英略系) 호장(戶長) 진의(陳懿)를 시조로 전하는 문헌도 있다.
    과거급제자(조선시대)
     진근(陳瑾, 1557 丁巳生) : 무과(武科) 선조17년(1584) 별시 병과(丙科)
     진성재(陳聖材, 1679 己未生) : 생원진사시(生員進士試) 숙종41년(1715) 식년시 삼등(三等)
     진응구(陳應龜) : 생원진사시(生員進士試) 명종1년(1546) 식년시 삼등(三等)
     진광철(陳光喆, 1698 戊寅生) : 생원진사시(生員進士試) 영조11년(1735) 증광시 이등(二等)
     진여정(陳汝貞, 1533 癸巳生) : 생원진사시(生員進士試) 명종13년(1558) 식년시 삼등(三等)
     진훈(陳訓) : 생원진사시(生員進士試) 명종7년(1552) 식년시 삼등(三等)
     진숙광(陳叔廣) : 역과(譯科) 선조9년(1576) 식년시 ()
    * 모두 7명의 과거급제자가 있다.
    (무과 1명, 생원진사시 5명, 역과 1명)
  • ※ 과거급제자는 조선조방목 기록을 기준으로 한 것이므로 실제와 다를 수 있다.
  • 본관 연혁
     본관소재지 : 전라남도 나주
    나주(羅州)는 전라남도 나주시(羅州市) 지역으로 백제 때 발라군(發羅郡)으로 불리었고, 뒤에 죽군성(竹軍城)으로 바뀌었다. 백제 멸망 후 당나라가 이곳에 대방주(帶方州)를 설치하였으며, 686년(신라 신문왕 6)에는 통의군(通義郡)으로, 757년(경덕왕 16) 이후로는 금산군(錦山郡) 또는 금성군(錦城郡)으로 부르며 무주(武州: 光州)의 관할로 두었고, 회진현(會津縣)·여황현(艅艎縣)·철야현(鐵冶縣) 등이 부속으로 영입되었다. 940년(고려 태조 23)에 나주로 지명이 바뀌었고, 983년(성종 2)에 나주목이 설치되었다. 995년(성종 14)에는 나주진해군절도사(羅州鎭海軍節度使)가 되었다. 1018년(현종 9) 다시 나주목으로 고쳐 5개의 속군(무안·담양·곡성·낙안·남평)과 11개의 속현(철야·반남·안노·복룡·원율·여황·창평·장산·회진·진원·화순)을 거느렸다. 1310년(충선왕 2)에 지주사(知州事)로 강등되었다가 1356년(공민왕 5)에 다시 목으로 승격하였다. 고려·조선시대를 통하여 주로 목(牧), 부(府)로서 전남지역 행정의 중심지를 이루었다. 1895년(고종 32) 지방제도 개정으로 나주부로서 나주군 등을 관할하였고, 1981년 나주읍과 영산포읍이 통합하여 금성시로 승격하여 나주군에서 분리되었고, 금성시는 1985년 나주시로 개칭되었다. 1995년 나주시와 나주군이 통합되어 나주시로 개편되었다.
    인구수
    통계청의 인구조사에 의하면 나주진씨는
    1985년에는 571가구 2,542명, 2000년에는 1,217가구 4,020명,
    가장 최근인 2015년에는 4,167명으로 조사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