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래
평양채씨(平壤蔡氏)에 대한 자료가 없습니다.
과거급제자(조선시대)
채정은(蔡廷誾, 1559 己未生) : 생원진사시(生員進士試) 선조39년(1606) 증광시 삼등(三等)
* 모두 1명의 과거급제자가 있다.
(생원진사시 1명)
※ 과거급제자는 조선조방목 기록을 기준으로 한 것이므로 실제와 다를 수 있다.
본관 연혁
본관소재지 : 평안남도 평양
평양(平壤)은 평안남도 남서부에 위치한 지명으로 단군조선에 이어 BC 813년 기자(箕子)의 후조선을 거쳐 BC 194년 위만조선의 수도가 되었다. BC 108년에는 한사군이 설치되면서 낙랑군에 속했으나 313년(미천왕 13) 낙랑군이 멸망하였고, 427년(장수왕 15)부터 240년간 고구려의 도읍지로서 전성기를 누렸다. 668년(보장왕 27) 고구려가 멸망한 후 당(唐)의 안동도호부에 속하였다가 676년 통일신라의 변방으로 수복되었다. 919년(고려 태조 2)에는 평양성을 축조하고 대도호부(大都護府)로 정하였으며, 926년(태조 6)에 서경이라고 불렀다. 1269년(원종 10)에 서경에 동녕부(東寧府)를 두고 파령(破嶺: 慈悲嶺)으로 경계를 삼았다가 1290년(충렬왕 16)에 다시 서경유수를 두었다. 1369년(공민왕 18)에 만호부(萬戶府)를 두었다가 평양부로 개칭하였다. 1413년(태종 13)에 평안도 평양부로 개편하여 관찰사가 부윤(府尹)을 겸임하였다. 1895년(고종 32) 지방제도 개정으로 23부(府)의 하나가 되었다. 1896년 전국을 13도(道)로 분할함에 따라 평남 도청소재지가 되었다. 1914년 군면 폐합으로 부제(府制)가 실시되었고 대동군이 평양부에서 독립되었다. 1946년 특별시로 승격되면서 평안남도와 분리되고 중구역·동구역·서구역·남구역·북구역 등 5개 구역으로 구획했으며, 1958년 대성구역을 신설하였다.
인구수
통계청의 인구조사에 의하면 평양채씨는
1985년에는 41가구 168명, 2000년에는 188가구 605명,
가장 최근인 2015년에는 139명으로 조사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