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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고령김씨(高靈金氏)
유래
시조 : 김남득(金南得)
시조 김남득(金南得)은 경순왕의 11세손 의성군(義城君) 김석(金錫)의 장손으로 고려에서 전리 좌랑(典理佐郞)을 역임한 김의(金宜)의 맏아들이다. 문헌에 의하면 그는 본명이 김기지(金麒芝)로 1340년(고려 충혜왕 복위 1년) 진사(進士)가 되어 감찰 집의(監察執義 : 사헌부에 소속된 정3품 벼슬)를 지내고, 공민왕 때 양광도 안렴사(楊廣道按廉使)를 거쳐 판개성부사(判開城府事), 문하평리(門下評理)에 이르렀다. 그후 사은사(謝恩使)로 원나라에 가서 예부 상서(禮部尙書)를 명받고 환국하자, 왕이 익대공신(翊戴功臣)으로 고양부원군(高陽府院君)에 봉하고 "득어영남지의(得於嶺南之意)"라고 이름을 하사하였다. 그리하여 그는 이름을 김남득(金南得)으로 하였고, 후손들이 본관을 고령으로 하게 되었다. - 묘소는 고령군 쌍림면에 있다. 인물
고려 공양왕(恭讓王) 때 간관(諫官)을 지낸 김무(金畝 : 시조 남득의 아들)의 아들 4형제가 뛰어났다.
맏아들 김사행(金士行)은 조선 세종 때 여산, 홍산 등지의 부사(府使)를 역임하고 선정(善政)을 베풀어 송덕비(頌德碑)가 세워졌으며 사복시정(司僕寺正)에 올랐고, 차남 김사문(金士文)은 사헌부 집의(司憲府執義)를, 김사충(金士忠)은 승지(承旨)를, 막내 김사신(金士信)은 합천 군수(陜川郡守)를 지냈다. 김사행의 아들 5형제 중 맏아들 김자숙(金子肅)은 세종 때 학행(學行)으로 형조 참의(形曹參議)에 천거되었으며, 김자행의 장남 김형생(金荊生)은 성종 때 문과에 급제하고 감찰(監察)을 역임하여, 하양 군수(河陽郡守)를 거쳐 병조 참판(兵曹參判)에 오른 차남 김장생(김莊生)과 함께 이름을 떨쳤다. 1510년(중종 5년)에 무과에 급제한 김수(金銖)는 고성군수(固城郡守), 진주목사(晋州牧使), 순천부사(順天府使) 등을 역임한 후 정3품 당상관직인 절충장군(折衝將軍)으로 병조참판(兵曹參判)에 올랐으며, 아우 김구(金鉤)는 문과에 장원하여 하동, 순천, 수원 등지의 부사(府使)와 병조참판(兵曹參判)을 지냈다. 명종 때 제주목사(濟州牧使)로 왜구를 대파하여 한성부 판윤(漢城府判尹)에 특진한 김양촌(金陽村)은 1559년(명종 14년) 평안도 병마절도사가 되어 수차에 걸친 오랑케의 침략을 격퇴하다가 전사하여 뒤에 청백리(淸白吏)에 녹선되었다. 그리고 경원 부사(慶源府使) 김세문(金世文)의 아들 문절공(文節公) 김면(金沔)은 이황(李滉)의 문하에서 성리학(性理學)을 연마하고 많은 후진을 양성했으며, 뒤에 효렴(孝廉)으로 벼슬에 임명되었으나 모두 사퇴하였고, 1592년(선조 25년) 임진왜란이 일어나자 거창, 고령 등지에서 의병을 규합, 진주목사(晋州牧使) 김시민(金時敏)과 함께 격퇴시켜 그 공으로 합천군수(陜川郡守)가 되었다. 그외 인물로는 첨지중추부사(僉知中樞府事) 김천장(金千章), 현감(縣監) 김충립(金忠立), 동지중추부사 김춘명(金春明), 감찰(監察) 김응수(金應洙) 등이 유명 했고, 현종 때 토산 현감(兎山縣監)을 지낸 김초중(金楚重)은 어영별장(御營別將) 김자, 칠곡 군수(漆谷郡守) 김한주(金翰周)와 함께 무신으로 가문을 빛냈다. 주요 인물
과거급제자(조선시대)
김언국(金彦國) : 문과(文科) 중종17년(1522) 식년시 을과(乙科)
김탁(金鐸) : 문과(文科) 중종14년(1519) 식년시 병과(丙科) 김초중(金楚重, 1638 戊寅生) : 문과(文科) 현종14년(1673) 식년시 갑과(甲科) 김형생(金荊生) : 문과(文科) 성종16년(1485) 별시 삼등(三等) 김진중(金晉重, 1655 乙未生) : 문과(文科) 숙종28년(1702) 식년시 갑과(甲科) 김기남(金起男, 1592 壬辰生) : 무과(武科) 인조15년(1637) 별시 병과(丙科) 김섭(金涉, 1511 辛未生) : 무과(武科) 선조16년(1583) 별시 병과(丙科) 김성일(金成日, 1601 辛丑生) : 무과(武科) 인조15년(1637) 별시 을과(乙科) 김우성(金宇成, 1625 乙丑生) : 무과(武科) 효종2년(1651) 별시 을과(乙科) 김어둔(金於屯, 1585 乙酉生) : 무과(武科) 인조15년(1637) 별시 병과(丙科) 등 모두 26명의 과거급제자가 있다. (문과 5명, 무과 6명, 생원진사시 15명) 항렬자
본관 연혁
본관소재지 : 경상북도 고령
고령(高靈)은 경상북도 남서쪽에 위치한 지명으로 대가야국의 중심지로 이진아고왕(伊珍阿鼓王: 內珍朱智)으로부터 도설지왕(道設智王)까지 16대 520년간을 계승해 오다가 562년(신라 진흥왕 23) 신라에 병합되었고, 757년(경덕왕 16)에 고양군(高陽郡)으로 강주(康州: 晉州)의 관할이 되었다. 1018년(고려 현종 9) 영천현(靈川縣)으로 개편되어 경산부(京山府: 星州)에 속하게 되었다. 1175년(명종 5)에 감무를 두었다. 1413년(태종 13)에 고양군과 영천현을 고령현(高靈縣)으로 병합하고, 1895년(고종 32) 지방재정 개정으로 성주군(星州郡)과 현풍군(玄風郡)의 일부를 통합한 고령군이 되었다. 1975년 고령면이 읍으로 승격되었다. 인구수
통계청의 인구조사에 의하면 고령김씨는
1985년에는 3,712가구 15,564명, 2000년에는 4,279가구 13,692명, 가장 최근인 2015년에는 15,611명으로 조사되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