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래
시조 : 초해창(楚海昌)
초씨는 중국 강릉(江陵)에서 시작되었다고 하며, 우리나라 초씨의 시작은은 1644년(인조 22) 명나라 한림학사(翰林學士) 초해창(楚海昌)이 명나라가 망하고 청나라가 새로 일어나자, 불사이군(不事二君)의 충절로 우리나라에 망명하여 충의 장군(忠義將軍)으로 성산백(星山伯)에 봉해지고 성주(星州)에 정착한 것이 시초가 된다. 그 후 그의 아들 초수명(楚壽命)이 청나라가 밀파한 자객을 피하여 명(明)자가 붙은 고을을 찾아 함경북도 명천에 숨어지낸 후 자손들이 번창하여 초해창(楚海昌)을 시조로 하고 조상의 옛 고향인 파릉을 본관으로 삼게 되었다.
인물
조선 순조 때 효행으로 명성을 날려 효자 정문이 세워진 초중연(楚重燕)과 용안 현감(龍安縣監)을 지낸 초각(楚珏)이 유명했고, 헌종 때 대사간(大司諫)을 역임한 초병덕(楚秉悳)은 정평 군수(定平郡守)를 지낸 초우섭(楚禹燮)과 함께 파릉초씨 가문을 빛냈다. 이밖에도 효자로 칭송을 받았던 초원명(楚原明)과 초선(楚璿)이 유명했으며 통덕랑(通德郞)에 오른 초갑이 당대에 뛰어났다.
족보발간
- 무자보(戊子譜, 1828)
본관 연혁
본관소재지 : 중국(中國) 호남성(湖南省)
파릉(巴陵)은 악양(岳陽)의 옛 지명으로 중국 호남성(湖南省) 북동 끝에 있는 악양 지구의 현공서(縣公署) 소재지이다. 동정호(洞庭湖)의 물이 양자강(揚子江)으로 흘러나가는 출구에 위치하여 양자강의 수운(水運)과 경광철도(景廣鐵道) 육운(陸運)이 겹쳐 있어서 호남성의 관문 구실을 한다. 남북조시대부터 있어온 옛 도시로 악주성(岳州城) 서문(西門)에 있는 악양루(岳陽樓)는 동정호와 양자강을 전망하는 웅대한 경관으로 유명하다.
인구수
통계청의 인구조사에 의하면 파릉초씨는
1985년에는 27가구 105명, 2000년에는 9가구 33명,
가장 최근인 2015년에는 0명으로 조사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