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래
시조 : 최지무(崔枝茂)
시조 최지무(崔枝茂)는 고려 때 무과에 급제하고 상호군(上護軍) 판선공감사(判繕工監事)로 공을 세워 용강군(龍崗君)에 봉해졌다. 그후 손자 최개산(崔開傘)이 조선 세조 때 문과에 급제하고 감무(監務), 호조판서(戶曺判書)로 직간을 하다 북쪽으로 유배되어 정착하여 살면서 후손들이 청주최씨에서 분관하여 본관을 용강으로 하였다.
항렬자
17世
교(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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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世
진(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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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世
구(求)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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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世
근(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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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世
섭(燮)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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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2世
준(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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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3世
선(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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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世
태(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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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5世
모(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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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6世
현(炫)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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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7世
균(均)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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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8世
용(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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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9世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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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0世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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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1世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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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2世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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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3世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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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4世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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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5世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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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6世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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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世와 代는 다른 것으로 世에서 1을 뺀 값이 代가 된다. (예: 18世孫은 17代孫)
본관 연혁
본관소재지 : 평안남도 용강군
용강은 평안남도 서남단에 위치하는 지명으로, 본래 황룡국(黃龍國)이었으며 후에 고구려에 병합되었다. 고려 시대에는 황룡성(黃龍城) 또는 군악(軍岳)이라 하고 영을 두었으며, 후에 용강이라고 고쳐 현령으로 하였다. 조선시대에 여러 차례의 변천을 거쳐 1895년 갑오경장 때에 군으로 되고, 1914년에 부군 폐합 대에 함종군의 일부를 통합, 현재에 이르고 있다.
인구수
통계청의 인구조사에 의하면 용강최씨는
1985년에는 43가구 280명, 2000년에는 35가구 104명,
가장 최근인 2015년에는 0명으로 조사되었다.